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함양 그냥 전진석 문화전사
우리네 무대공연 예술 종사자들의 무덤 코로나19 난리 통에 나도 예외 없이 휩쓸려 코로나는 물론 대상포진까지 달라붙어 고생 꽤나 했다. 이것도 나이라고 면역력 저하 탓인지 모르겠다. 예전 교통사고 후유증마저 덩달아 고개를 쳐들어 졸지에 그야말로 총체적 스트레스에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는 칠순 팔자가 된 셈이다.
이래저래 하루하루가 그냥저냥 답답하고 별 재미없는 나날인데, 지난주 함양에서 지리산의 해맑은 공기 같은 한 통의 반가운 전화가 날아왔다. 그 전화의 주인공이 바로 사단법인 다볕문화의 그냥 전진석(60세) 문화전사다. ‘그냥’은 그의 호요 ‘다볕’은 함양(咸陽)의 순수 우리말이다.
그는 나더러 대전까지 KTX 기차로 오면, 기차가 없는 함양에서 자기 차로 나를 데리러 올라오시겠단다. 전립선이 안 좋아 잦은 소변 때문에 장거리 버스 여행은 좀 곤란한 나를 배려해서다. 이거야말로 옳다구나 땡이로구나, 그 말 한마디에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일상탈출’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참인가! 그것도 우리 경주 최씨 시조인 고운 최치원 할아버지의 애민정신이 깃들인 함양 상림공원을 무대로 ‘최치원 정신’ 찾기 공연을 위한 희곡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눠보자는 화두다.
우리는 대전 역 앞에서 만나 그의 차에 동승했다. 그는 함양이 가까워오자, 무안 진안을 포함해 ‘무진장’하는 그 장수쯤에서 일부러 대통 고속도로를 버리고 꼬부랑 숲속 드라이브 산길을 택해주었다. 60령 고개, 옛날 산적 때문에 사람들이 60명 이상 모여야 넘었다는 그 고개를 넘어 덕유산과 백운산, 지리산 등 백두대간을 바라보고 느끼는 순간 나의 우울증 치료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함양까지 이어지는 산중 숲길은 그야말로 꿈길이었다.
그와의 인연은 수년 전 경남연극제가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을 때부터다. 나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그는 집행부의 임원으로서 세 명의 심사위원들에게 함양 구경을 구석구석 시켜주었다. 그 후 나는 그의 제안으로 함양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신판 ‘변강쇠 옹녀 이야기’를 썼지만 제작 여건상 아직 공연을 못 했다. 사실 나는 그와의 만남 이전부터 작품으로 함양과의 인연을 맺고 있었다.
변강쇠의 일부 무대가 지리산 벽송사 주변이기도 한데, 그 절 주지가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내 고향 고성(固城) 중학교 동기 종하 스님이었다. 속명이 최낙천인 그가 살았을 때 벽송사 아래 흐르는 계곡물과 마천(馬川) 등을 배경으로 내가 쓴 <꽃비> 희곡을 부산연극제 무대에 올렸었다.
이조 초엽 억불숭유정책으로 벽계와 벽송을 비롯한 스님들이 지리산 깊은 산중으로 숨어 들어가 불교를 지켜낼 때의 이야기가 줄거리다. 이래저래 나에게서 최치원 이야기기가 작품으로 거듭나면, 함양에서의 세 번째 희곡이 될 모양새다.
우리는 함양에 도착해서 고운 광장과 최치원 역사공원의 상림에 들러 사진 한 컷도 담았다.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천령(함양의 옛 지명) 태수로 있으면서 고을을 가로 지르는 위천의 홍수를 막기 위해 물길을 돌려 둑을 쌓고 숲을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대관림(大館林)이란다. 백성들의 안위와 토지확장의 애민정신을 기리기 위해 여기에 1923년 경주 최씨 문중에서 세운 비가 문창후선생 신도비다.
바로 이러한 ‘최치원 정신’을 살려 상림에서의 상설 공연 무대화로 경주 최씨 문중은 물론 우리나라 전국 애호가들의 문화 성지로 가꿔 꽃을 활짝 피워보겠다는, 함양을 사랑하는 현지인다운 포부와 꿈이다. 그는 전직 교사로서 문화 전사가 된 후 예술 공연단체를 꾸려 국내뿐 아니라 외국공연까지 다녀왔다.
특히 2012년엔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가 오스트리아 비엔나, 루마니아, 체코 등 유럽 3개국 순회 연주를 성공리에 뽐냈다. 나는 ‘그냥 문화전사’를 통해 지리산의 자연과 함양의 상림 문화 콘텐츠로 우울증을 뻥 걷어 차버렸다. 미상불 약봉지까지 이별한 후 이튿날 역시 그가 개인차로 바래준 남원역에서 몸도 마음도 가뿐히 날 듯 서울행 기차를 탔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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