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초연 창작극 <깡통>에서 만난 강기호 연출
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초연 창작극 <깡통>에서 만난 강기호 연출
초연 창작극 <깡통>(사진, 첫 공연 후 출연 배우들과 앞줄 가운데 좌우로 연출과 작가)의 원제는 <가설극장>인데, 바로 그 가설극장하고도 깡통에서 강기호 연출을 만났다.
지난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인사아트홀 제1관 무대에 오른 극단 호메로스(대표 류재국)의 <깡통>은 강연출과 작가로서 초연 창작극으로만 <서시장 여간첩>(원제:풍물시장 여간첩)에 이어 두 번째 인연인 셈이다.
연극을 인생에 비유하듯 흔히들 초연 창작극은 작가들 사이에서 관객에게 처녀성을 바치는 거라고까지 말한다. 그만큼 초연 창작극은 산고의 아픔을 딛고 고고의 성을 터뜨리는 아기 탄생과도 같다. 물론 탄생의 기쁨은 관객들의 몫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강연출는 여수 극단 파도소리의 대표이기도 한데, 파도소리 극단은 그의 연출로 2017년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으로 대통령상과 연출상을 거머쥐었다.
그만큼 여수와 전남 연극의 간판 터줏대감에서 전국적인 명문으로 발돋움해 우뚝 섰다. 이제 서울 중심가 인사동 예술의 메카에서도 그 존재감을 맘껏 뽐냄으로써 강연출이 한층 더 빛나 보이는 것이다. 나는 강연출이 한국연극협회 전남지회장 시절 전남연극제 심사위원으로 몇 번 참여해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때와는 달리 연달아 초연창작극으로만 두 차례 손잡고 힘을 합친 작품이라 그럴까, 초연 창작극에 대한 그의 찬란한 창조적 연극정신이 돋보인다.
이번 무대는 연극 참여자 모두가 코로나 전염병과 맞장 뜨며 정면 돌파하듯 밀어붙여 어려운 공연환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진짜 ‘영혼극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 연극을 보면서 나는 2013년 세상을 버린 친구 강태기 배우를 떠올렸다. 이 연극의 뿌리를 어쩜 1986년 개봉한 영화 <어울렁 더울렁>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차성호 감독이 메가폰을 쥔 배우 강태기 주인공의 김영호 제작 극영화다. 어느덧 차감독도 운명을 달리 해 둘 다 고인이 됐지만, 그 영화를 촬영할 때부터 나는 꾸준히 강배우와 함께 연극무대에의 꿈을 가꿨다.
차감독이 <목밀녀>라는 제목으로 어울렁 더울렁 후속편까지 만들어 영화극장에 붙일 때까지도 연극무대에의 꿈은 요원하기만 했다. 그런데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야 겨우 첫 희곡이 완성되고 <깡통>이라는 각설이 무대가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가 그립다. 생전에 그와 연극을 함께 한 모노드라마 <돈>과 내 고향 고성(固城) 이야기 <간사지> 무대도 덩달아 아련히 떠오른다. 3월 12일이 기일이니까, 봄이 오면 그가 잠든 인천 승화원에라도 찾아봐야겠다.
<깡통>을 보면서 잠시 추억여행 샛길로 빠져 먼저 타계한 친구를 떠올린 것은 나름 이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그야 어쨌든 첫날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서니까 인사동 거리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구촌 전 인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종 바이러스에 쩔쩔 매는 세태 풍경화가 자칫 지구촌을 가설극장으로 한 삼류희극 코미디 같지 않은가? 사이비 종교집단의 황당한 외침처럼 시나브로 지구 파탄과 종말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이날 따라 <깡통> 막 오르길 기다렸다는 듯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이란다.
저녁 7시30분 시작인 공연이 끝날쯤을 맞추기라도 한 듯 9시 이후 음식점조차 문을 다 닫아서일까, 평소엔 그렇게 많던 행인들 모두 ‘방콕’이나 ‘집콕’으로 피난 간 모양이다. 미상불 준전시 상황을 좋이 방불케 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 시민들과 거리의 현주소다.
이와는 상관없이 썰렁한 객석을 온몸으로 데워주듯 깡통 무대를 뜨겁게 달군 젊은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의 열기만은 아직도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이것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관객으로서 공유하고 고백하는 코로나시대의 연극관람 자화상이요 초상화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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