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과 정순왕후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사릉(思陵)’
가을에 떠나는 역사여행
단종과 정순왕후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사릉(思陵)’
“단종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하여 사릉(思陵)이라고 불려”
오랜 침묵을 깨고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번지에 소재한 사능(思陵)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 있다. 정순왕후는 여랑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조선 6대 임금 단종 2년(1454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는 이듬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자 의덕왕대비가 되었고, 세조 3년(1457년)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다. 정순왕후도 남편 따라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정업원(왕실의 여자들이 출가하여 수도하던 절, 현 종로구 숭인동 위치)으로 쫓겨 갔다.
부부가 생이별되고, 단종이 17세에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정순왕후는 매일 단종을 그리워하며 정업원 뒷산 동망봉에 올라 단종이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했고, 중종 16년(1521년)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자, 현재의 위치에 묘를 조성했다.
그 후 177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년), 단종이 복위 되면서 군부인에서 정순왕후로 복위되었고, 묘는 릉이 격상 되었다. 묘호는 단종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하여 사릉(思陵)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릉(陵)과는 달리 숨은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원래 왕릉이 조성되면 인근 민묘는 모두 이장하게 되어 있는데 사릉 경내에는 해주 정씨 묘역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사연인즉 단종의 친 누나 경혜공주는 정충경의 아들 정종 사이에 아들 정미수를 낳았다.
단종 비인 정순왕후는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를 시양자로 삼을 만큼 끔찍이 사랑했다. 이런 인연이 정순왕후가 어려움을 겪던 시절 해주 정씨 도움을 받았고, 복위 후 릉(陵) 내 민 묘를 그대로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예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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