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부터) 최송림 작가, 배우 김시유, 손현규 연출
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김시유 모노드라마 ‘돈’
김시유 모노드라마 <돈>(손현규 연출)이 3월 22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막이 오른다는 반가운 봄소식이다. 손 연출이 대표인 ‘창작집단 꼴’이 제작한 1인극 <돈> 초연은 1989년 연극천재 고(故) 강태기 명배우가 부산 가톨릭센터 소극장에서 첫 팡파르를 울렸었다. 나는 작가로서 오랜 친구 사이인 우리는 각자의 딸깍발이 고집 성(性)을 살려 ‘최강’의 연극을 만들자고 서대문에 ‘강태기 연극방’이라는 극단 사무실까지 마련하여 손발을 맞추며 함께 빚어낸 소중한 열매, 찰진 결실이었다고나 할까?
그 후 서울은 물론 대구, 천안, 창원, 안성 등등 전국을 돌며 순회공연을 한 기억이 어젠 듯싶은데 추억처럼 아련하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 밴쿠버 한인극단 ‘하누리’ 창단공연 해외 나들이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나중엔 강씨다운 고집이 발동해 제목을 <돈태기>로 자신의 이름에다 아예 성까지 돈으로 바꿔 마지막 서울 공연을 한 게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다.
그랬던 강배우가 2013년 3월 12일 ‘돈비를 맞으며 애꾸눈 말을 타고 하늘나라’로 떠난 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 앞에서 올린 대한민국 연극인장 영결식에서 내가 쓴 추도시 ‘강태기 연극열사를 보내며’를 바치던 여배우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도 말이다.
나는 친구의 기일 전후로 시간이 나면 그가 잠든 인천 가족공원 승화원에 다녀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사실 나는 그가 떠난 후 2015년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학 5월호에 고인을 추모하며 <동숭동 밤하늘엔 별이 뜨지 않는다> 희곡을 발표했었다. 그것을 재작년 경기연극올림피아드 참가작으로 안성용설아트스페이스 극장에서 고양시 대표 극단 행주치마가 무대에 올렸는데, 강태기 추모극이 된 셈이다.
나는 진작부터 올해도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고민(?)에 빠졌었는데, 나와는 <장부의 길>로 인연을 맺은 손연출이 강배우가 했던 1인극이라도 해서 그를 기리면 어떻겠냐고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그가 내세운 연기자가 김시유 배우다.
김배우는 그 유명한 실험극장 <에쿠우스(EQUUS)> 최근 공연에서 강태기 배우가 했던 바로 그 알런 역을 맡아 큰 박수를 받았다. 누가 뭐래도 주인공 알런 역의 원조는 강태기 배우가 아닌가! ‘백 년 만에 하나 나타날까 말까 한 천재배우’라는 찬사까지 받은 그다. 요컨대 강태기 알런에서 김시유 알런을 한껏 뽐냈다는 말씀인데, 막 바로 이어서 강태기 초연 1인극 <돈>까지 선보인다. 김시유 배우는 그야말로 내 친구가 환생한 듯 강태기 명배우의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걷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돈>은 목포 연극 지킴이요 전남 무대 현장의 터줏대감인 강대흠 배우가 목포와 순천에서 공연한 바도 있다. 그런데 이 공연을 위해 서울에서 목포까지 내려가 연출을 맡았던 김완수 극단 대하 대표의 마지막 유작이 될 줄이야!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만난 인연들을 돌이켜보면, 미상불 인생무상을 문득문득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야 어쨌든 작가로서 이번 공연만큼 희망적인 무대도 드물다. 연습실에서 땀 흘리는 김배우와 사진 한 컷(배우를 가운데로 좌우 작가와 연출)을 챙겼는데, 그는 에쿠우스의 알런 역 말고도 <정의의 사람들>, <미궁의 설계자> 등 여러 작품에서 푸르른 젊은 연기를 활짝 꽃피웠다. 흔히들 1인극은 삶이 묻어나고 인생이 좀 무르익은 나이, 적어도 배우 나이 40대는 지나야 연기자로서 제맛을 낸다고 한다. 아마도 1992년생 김배우는 역대 모노드라마 배우 중 가장 젊은 배우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 만큼 ‘도전과 시도’의 그에게 거는 기대는 손연출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시유 배우와 1인극을 도전하는 것이 ‘그 여자를 노리는 별별 시도’ 이후 두 번째인데, 이번 역시 새로운 시도로 관객들을 사로잡길 바란다.” 글/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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