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풍물시장 여간첩’의 서울 귀경
2022년 원로예술인 공연지원 선정작 <풍물시장 여간첩>(강기호 연출)이 지난 12월 16일부터 3일간 서울 대학로 76스튜디오 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 희곡은 내가 2016년 한국희곡 겨울호에 발표했는데, 강 연출이 대표인 여수 극단 ‘파도소리’가 2018년 자체 극장에서 초연할 때 원제를 밝히고 그곳 시장 이름을 따서 제목을 <서시장 여간첩>으로 바꿨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원제대로 <풍물시장 여간첩>이 제자리 서울로 귀경(歸京)한 셈이랄까? 그야 어쨌든 지난번 서울 무대는 일주일 전 여수에서 먼저 관객들에게 선보인 후라 순회공연 형식을 띠었다.
출연진도 낯익은 연기자들이라 시선을 확 끌기에 충분했다. 윤범호, 이서영 배우 등도 중량감이 주목되지만 특히 현석, 안병경, 조양자 큰 배우가 그들이다. 현배우는 TV MBC 연기대상 수상자로 <수사반장><한지붕 세가족><아버지와 아들> 등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안배우 역시 KBS 연기대상 수상자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서편제><뮤지컬 백범 김구> 등이 회자 된다. 타이틀 롤 조양자 여배우 또한 <태종 이방원><내 생애 봄날><기막힌 유산> 등에서 인기를 모았었다. 그야말로 요즘 대학로에서도 보기 드문 호화 출연진이 아닌가 싶다. 첫공이 끝나고 이들과 무대에서 사진 한 컷(배우들 뒤 좌우로 작가와 연출)을 챙겼다.
나는 이 공연을 본 후에도 자꾸만 떠오르는 한 얼굴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지난 6월 여수에서 타계한 이계준 배우가 그다. 그는 <서시장 여간첩> 때 출연한 연기자로서 나와는 몇 편의 작품을 더 함께 한 사이다. 이 배우는 ‘왕초품바’ 전국순회 장기공연으로 매스컴을 타며 잘 알려졌는데, 2012년 여름 한 달간 대구에서 공연한 모노드라마 <품바대장 술꾼>(김도훈 연출)이 내 1인극 희곡이기도 하다. 그의 삶도 어쩜 품바처럼 여러 지역을 떠돌며 타령으로 생을 마감한 연극 인생 그 자체다.
내년 상반기쯤 나올 성싶은 내 1인극 시리즈 희곡집을 준비하는 중이라 그의 얼굴이 새삼 더욱 짠하게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내가 쓴 <깡통(부제:가설극장)>을 강 연출과 2020년에 서울과 여수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깡통은 이 배우의 극단 이름이기도 했다.
<풍물시장 여간첩>은 국밥집 주인으로서 모든 손님에게 공깃밥과 김치찌개 등 간단한 안주를 무료로 제공한다. 심지어 손님이 갈 땐 양말 한 켤레도 공짜로 선물한다. 누가 봐도 밑지는 장사다. 이를 수상하게 여기는 단골손님들과 풍물시장 사람들은 남파간첩 비밀 공작금으로 국밥집을 운영한다고 쑥덕거리며 그녀를 ‘여간첩’이라 부른다. 그들 사이엔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듯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면서 이런 가난한 서민들이 주 고객인 손님들은 자신들이 돈이 없어서 국밥집에 오는 게 아니라 ‘낭만과 멋’으로 찾는 것뿐이라며 오히려 큰 소리를 탕탕 친다. 그럼에도 안주는 시키는 법이 없다. 무료로 제공되는 안주와 밥을 먹고 양말까지 꼬박꼬박 받아간다. 단골들로부터 여주인이 받던 의심은 차츰 인심으로 변하고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데 이 고마운 국밥집을 널리 알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게 하여 시장(市長)으로부터 상도 받게 하자는 등 군중심리에 들뜨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몰려와 자리가 없어 자기들이 밀려날까 봐 고민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여주인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친다. 그녀는 숨겨진 자기만의 가슴 아픈 사연을 남몰래 안고 사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보니 작년에 고인이 된 우리 북경기신문 창간 기자였던 이관일 시인도 작중인물 중 한 모델임을 밝힌다.
풍물시장에서 여간첩을 모르면 진짜 간첩이라는 그 구제품 같은 그녀의 국밥집은 삶에 찌들고 가난한 우리 이웃에게 잠시나마 휴식과 웃음을 나눠주는 서민들의 해방구라고나 할까, 우리네 굴곡진 근대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세태 풍자극에 재미와 감동을 담뿍 보탰다는 관객 평이다. 아무쪼록 작가로서 임인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풍물시장 여간첩>이다.
글/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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