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림의 이야기 정거장
산꾼 찍사 김길삼 한방원장
서울 경동 약령시장에 자리 잡은 상형당 김길삼 한방원장(사진 오른쪽)은 ‘인생은 한방’이라며 오늘도 우리들의 건강지킴이로서 노익장을 뽐낸다. 그의 명함엔 ‘혈전병, 부인병 상담 및 체질에 맞는 보약’이 전문이라고 밝히지만, 사실 내가 주목하는 건 보통 남자로서 그의 독특한 삶과 인생관이다.
그는 환자를 돌보기 전에 자신의 건강부터 지키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면서 스스로 건강관리에 남다른 시간을 투자한다. 주중엔 열심히 환자를 만나고 치료에 온 정성을 쏟지만, 일요일엔 무조건 산에 오른다는 철칙의 산 사나이다.
전형적인 산꾼인 것이다. 심지어 70대 중반 나이의 그가 막내로서 ‘다사랑 산악회’ 회장직을 맡아 80대 선배들까지 아우르며 매주 산행을 주도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진짜 공부는 자기를 알아가고 자신을 위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했던가? 등산이야말로 결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길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산행 등산길에서 갈고 닦은 몸과 마음으로 자신을 알아내며 맑고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나름의 한방철학이라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온갖 산을 다 누비는 것만큼 절경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다. 그야말로 찍사인 것이다. 나는 그가 보내주는 사진들을 즐겨봄으로써 스스로 마음 등반 최면을 걸어 머리를 맑게 한다. 김원장은 그동안 찍은 많은 사진들을 간추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사진첩 찍사 책으로 세상 빛을 보게 하겠다는 야무진 꿈도 소복소복 가꾼다.
그는 북한산을 올라 하산할 경우나 시간이 좀 날 때 우리 동네 가까운 불광역 주변 식당 ‘고성집’에 가끔 들르곤 하는데, 고성집은 다른 정식 이름의 간판이 어엿이 붙어 있는데도 내가 그렇게 입버릇처럼 부르니 다들 따라 불러준다. 그 집 주인과 내가 경남 고성(固城) 동향인이라 나는 지금도 그냥 향수(鄕愁)라도 달래듯 편안하게 고성집이라 부르길 즐긴다.
그 집은 어쩌다 보니 이웃 동료 연극인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라 TV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이승만 역으로 잘 알려진 권성덕 원로배우를 비롯 단골손님이 여럿 있다. 김원장은 찍사 아니랄까 봐 예술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해 언젠가 우연히 자리를 함께한 권배우님과 셀카로 한 컷(김원장을 가운데로 좌우 권배우님과 필자)을 놓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야 어쨌든 그는 어쩜 가업(家業)을 이어받은 셈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가 유명한 김수봉 한의사다. 한의학 박사인 부친이 미국 캘리포니아 교민사회에서 ‘중인(中仁) 한의원’을 운영할 때 부원장으로서 아버지를 스승같이 모시며 6여 년간 미국 생활을 한 적도 있는 그다. 꽤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아무쪼록 그는 나의 오랜 벗으로서 언제부턴가 건강 주치의 역할까지 해주는 사이가 됐다. 지난해 봄 내가 신경과 전문병원에서 목 디스크 협착증과 알코올성 치매 전조증 진단을 받고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다행히 머리와 목에 각각 찍은 MRI 사진 결과에 따라 큰 수술 없이 잘 마무리됐으나 우울증은 나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바로 이 시기에 그가 내게 준 한의학적 우정어린 조언은 일상을 회복하는 데 보탬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김원장과 나는 비교적 자주 만나는 편이다. 때론 탁배기 박치기까지 나누며 내가 필요한 사진도 뿌리치지 않고 기꺼이 찍어준다. 내 전용 친구 사진사라면 결례가 될까? 어쨌든 그는 나뿐만 아니라 갑진년 청룡의 해에 값진 삶을 꾸리고 가꾸는 우리 이웃 보통사람들 모두의 육체적․정신적 주치의로서 날로 더욱 돋보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설날 명절맞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거리 경동 약령시장에서 질병 방어 보초인 양 우리네 건강을 지켜주는 그다. 언제나 자신을 포함한 노령 세대까지 모두의 건강 돌봄이 삶에 산꾼 찍사까지 덧씌워진 김원장의 존재감이 산 바위처럼 빛나 보인다.
글/ 최송림(본지 논설위원,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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