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의 방북의 의미
초미의 관심을 끌어왔던 지미 카터의 방북이 종료되었다. 4월 26일 평양으로 들어간 지미 카터 일행은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4월 28일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했으며, 대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친서에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제안까지 담겨있었다.
일반적인 평가는 ‘방북 실패’이다.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느냐 여부가 ‘방북 성과’를 좌우하지는 못한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그의 입을 통해 직접 의사를 전달받았다면 방북의 효과는 더욱 컸을 것임은 자명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하여 지미 카터의 방북을 ‘실패’로 규정할 수는 없다.
우선, 지미 카터의 방북 이유 및 목적은 무엇 이었나?
지미 카터는 이미 4월 초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조약(peace treaty)과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이들이 인도주의적 역경을 벗어날 수 있게 도울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평화조약과 비핵화 그리고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 세 가지를 방북 목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지미 카터 방북과 무관하게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물밑 접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4월 7일 미국의 캠벨 차관보와 북측의 김계관 부상이 같은 날 중국을 방문했고, <교도통신>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김계관 부상을 만난 직후 ‘남북 수석대표 회담 - 북미 수석대표 회담 - 6자 수석대표 회담’이라는 단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중-미 삼자가 이 부분에 합의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요구해왔던 ‘남북 핵회담’을 6자회담의 첫 공정에 놓음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위신을 세워주려는 모양새다.
지미 카터가 방북하던 날 중국의 우다웨이 특별사무관이 한국을 방문하여 위성락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만나 위의 삼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위성락 대표는 이 방안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위성락 대표는 4월 12일 미국을 방문하여 커트 캠벨 차관보를 만난 후 “(천안함·연평도) 사과가 6자회담 재개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는 않다”고 발언함으로써 중국측이 제시한 해법을 수용할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의 설득이 통했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카터 방북과는 별도로 6자회담 프로세스가 가동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카터의 방북 목적을 단순히 6자회담 재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6자회담 재개를 넘은 보다 근본적인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이 북측이 지미 카터를 초청한 이유이고, 지미 카터가 방북을 결행한 이유라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대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비록 개인 신분의 방북이라고 하지만 지미 카터는 분명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자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바마가 현재 처한 대북 문제의식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카터 방북의 목적을 추론하는 데 단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오바마는 북측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과연 북측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가. 또한 오바마는 이명박 정부의 딴지 걸기에 의해 대북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난제도 안고 있었다.
최근 대북 접근을 모색하고 있는 오바마로서는 북측의 핵무기 포기 의사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며, 한미동맹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딴지걸기를 돌파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로서는 북측의 신뢰를 받고 있으면서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고 있는 유력한 인물을 통해 핵 포기에 대한 북측의 정확한 의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렇게 확인된 입장을 갖고 대북 협상을 주도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카터 방북의 목적은 결국 오바마가 확인하고 싶은 것, 즉 핵 포기에 대한 북측의 보다 명확한 확답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측이 핵포기 의사를 보다 분명하게 한다면 오바마는 미국 내의 대북 강경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생기는 것이며, 이명박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보다 분명한 논리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카터 방북의 목적은 6자회담 재개의 동력확보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6자회담 이후 데탕트를 가속화할 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원장과의 면담은 왜 성사되지 못했나?
지미 카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못한 것을 “국가수반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런 데 대해 의미를 두지 않았다”라고 표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만약 ‘평화조약’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오바마측의 입장을 갖고 있었고, 오바마의 입장이 북측이 원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되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미 카터를 만나 핵 포기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의사를 ‘자신의 입’으로 오바마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을 것이다. 어쩌면 공개적인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지미 카터를 통해 확인한 오바마측의 입장이 못마땅했거나 또는 구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지미 카터를 대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며, ‘핵 포기의 구체적 조건’과 ‘대타협의 실패 시 북측의 향후 행보와 북측의 원칙적 입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북측은 판단했을 것이다.
다만 김정일 위원장은 다른 북측의 고위 인사를 통해 혹은 친서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오바마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즉 김영남 상임위원장이나 백의춘 외무상의 발언은 곧 자신 ‘김정일’의 입장과 동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미 카터의 방북은 실패했나?
대다수 언론들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지미 카터의 방북을 폄훼한다.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방북 보따리가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그러나 지미 카터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북측(보다 구체적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을 전달했다. 카터가 MB 정부를 대표해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북측의 대남 메시지는 구체적일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적극적인 견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내용’임이 분명하다.
또한 “한국 정부 뿐 아니라 미국 정부, 6자회담 다른 당사국과도 언제든지 모든 주제를 놓고 사전조건 없이 협상할 용의가 있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언급은 최근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북측 역시 공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미 카터의 방북은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남북대화 - 북미대화 - 6자회담’이라는 프로세스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남북대화’의 성격 문제이다. 한국정부는 6자회담 재개의 구색 맞추기식 ‘남북 대화’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우다웨이 특별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김성환 장관은 “남북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일회성 아니라 계속 열려나가는 체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남북 핵대화’에서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북측의 가시적인 입장과 조치가 없을 때 이명박 정부는 그 다음 수순 즉 ‘북미대화 -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설령 프로세스가 가동되더라도 북측이 ‘지속적 남북 핵 대화’에 얼마만큼 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북측은 한반도 핵문제는 북미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가 ‘지속적 남북 핵 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반도 핵문제는 남과 북이 당사자라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측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문제이다. 결국 변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접근이다. 따라서 지미 카터의 방북이 정세에 끼칠 영향은 직접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지미 카터의 ‘방북 보따리’는 미국이 한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접적 영향력은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북측은 지난 해 11월 미국의 민간 핵전문가들에게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를 공개하고, 12월에는 방북한 빌 리처드슨 뉴 멕시코 주지사와 ‘IAEA 사찰단 복귀, 우라늄 농축 핵연료봉과 미사용 플루토늄 연료봉의 해외 반출’ 등을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나고 나서도 한반도 비핵화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북측은 예의 ‘강경 노선’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평화이야기는 장창준(새세상 연구소 연구원)의 글을 요약한 것으로 본지 편집방향과는 다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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