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어주구리'
<생각해 봅시다>
어주구리(漁走九里)
큼직한 코끼리 한 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걸어서 숲속으로 여유있게 가고 있는데 쥐구멍에서 갑자기 생쥐 한 마리가 톡 튀어나오더니 “야! 코끼리야, 너 덩치 크다가 까불지 마, 내가 조그마한 놈이라고 깔보기만 하면 죽여 버릴꺼야”그러자 코끼리가 허허허허 하면서 한참 웃고 말대꾸를 하지 않자, 쥐가 화를 버럭 내며 “야! 너 정말 죽고 싶어. 죽어볼래”라고 하자 “까불지 말고 저리로 꺼져버려”라고 큰소리로 화를 내다가 갑자기 혈압이 올라 코끼리는 졸도 했고 생쥐는 신나게 웃다가 기절했다는 얘기다. 코끼리와 생쥐가 육지에서 한참 신나게 싸울 때, 바다에서는 고래와 새우가 신나게 싸우고 있었다. 새우가 고래보고 “야! 고래야! 너 우리 조상들 다 잡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내 형제 동생까지 다 잡아먹으려고 으르렁거리며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고 있는데, 너 오늘 잘 만났어 나한테 죽어봐. 그냥 놔두지 않겠어”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덤벼들자 고래는 기가 막혀서 죽어버리고 새우는 간이 배 밖에 튀어나와서 죽었다는 웃지 못 할 얘기가 있다.
인간이 세상을 살다보면 가소로울 때가 어디 한두 번이고 기가 막힐 때가 한두 번인가. 도둑놈을 보고 위협을 느끼면서 죽기 살기로 달려가 도둑놈을 잡아 놓고 “너 왜 남의 물건을 훔쳤느냐고”따지자 도둑놈이 하는 말이 나는 도둑질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고 큰소리치며 오히려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그럼 지금 당신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내 것인데 그래도 도둑질을 안 했냐고 따지자 내가 도둑질을 한 게 아니고 이 물건이 왜 지금 이 순간 내손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당당하게 얘기하더란다. 상식 밖에 짓을 하고도 더 큰 소리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소롭다던가, 기가 박히는 일이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얘기가 어주구리(漁走九里)라고 한다. 어주구리란 말의 시초는 한나라 때의 얘기다. 연못에 예쁜 잉어 한 마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 연못에 큰 메기 한 마리가 쳐들어왔고 그 메기는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고 무섭게 덤벼들었다. 잉어는 연못의 이곳저곳으로 죽기 살기로 메기를 피해 헤엄쳤으나 역부족이었다. 막상 코너에 몰린 잉어는 도망갈 곳이 없어지자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잉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뛰어오르게 되고, 지느러미를 다리 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메기는 잉어의 점프실력을 보고 자기도 초어적인 힘으로 뛰었지만 속된 말로 택도 없었기에 가만히 잉어가 뛰는 것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 때 그것을 본 농부는 잉어가 뛰는 것을 보고 따라 뛰었는데 잉어가 기운이 빠지고 숨이 목까지 차 뛰지 못하고 멈추었을 때, 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어주구리(漁走九里),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며 숨을 헐떡이는 그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와 온 식구들이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다.
사실 그렇게 살려고 도망치는 잉어를 잡았으면 좋은 인간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연못이나 냇가로 보내는 것이 정답이다. 살면서 능력도 안 되는 이가 센척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어주구리(漁走九里)라고 한다. 어디 가소로운 일이 그뿐인가. 기가 막히고 가소로운 일을 당할 때 “새발의 피”라든가, “모기 발의 워카(군화)”라고 하는 등 농담을 하면서 웃기고 웃고 살아가는게 인생이다.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아갈 때 남들이 나를 깔보며 어주구리(漁走九里)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주구리(漁走九里) 소리 만큼은 듣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가길 바란다. 글/박태원(본지 논설위원, 호원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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