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영웅은 위기의 순간에 탄생한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위기가 없으면 영웅도 존재 할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사람들은 영웅이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상 더 좋은 것이다. 영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난세 혹은 위기의 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언제나 위기의 상황으로 인식하는 듯하며, 그 위기를 스스로 돌파해나가려고 하기 보다는 영웅에 기대에 돌파 해 나가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탄생한 영웅은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진다. 그 영웅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영웅은 칭송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 영웅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 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웅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집단의 이익 및 권력과 연관이 있다. 5.16 군사 반란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는 역사관에는 이러한 이익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관 속에는 군사반란은 다시 재현될 수 있는 당위 속에서 새롭게 자리 매김 될 수 있는 것이다.
5.16을 영웅적 행동으로 볼 것이냐 군사반란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이제 과거사의 문제로 완결된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과거사로만 보는 역사가의 입장에서는 이미 끝난 과거일지 몰라도, 역사는 언제나 나의 현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그것을 역사로 치부하지 않고 현재 속에서 추억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결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것이다. 이제 이 과거는 지금 현재 우리들의 현실정치적인 문제가 되었다. 아니 이제 역사적 과거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발언으로 현대 한국 정치의 핵심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과거에 살았던 박정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재평가되면서 되살아나고 있다. 하나는 근대화에 따른 경제 안정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화의 관점이다. 이 두 입장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 스미스와 헤겔의 관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만약에 전자의 해석이 지배적이라면 그만큼 현재의 경제가 힘들어 졌다는 사실의 반증일 수 있고, 후자의 해석이 지배적이라면 민주주의 가치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비판이 가능하다. 자유와 민주화, 이것이 없는 상황에서의 개와 짐승 같은 노예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차라리 늑대의 삶이 행복이지, 개의 삶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지 그 다음 민주화고 자유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약간 극단화 시켜서 이야기 했지만, 우리는 과거에 이 두 극단적인 선택 가운데 하나 밖에는 선택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현재도 이 두 선택지 가운데 하나 밖에는 없는 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오늘 또 다시 우리는 경제냐 민주화냐 라고 하는 해묵은 문제의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민주화와 경제를 양립할 수 없는 모순처럼 바라보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고,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입각해서 우선 이기고 보자는 또 다른 집단이기주의의 망령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이 프레임은 민주주의는 배우지 못하고 경제논리만을 배운 사람에게서나 나올수 있는 선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위의 문제의식은 독재자가 만들어낸 문제의식에 불과하단 말이다.
명치유신에 입각한 일본식 민주주의를 따라 한국식 10월 유신 민주주의로 포장해 한국식 민주주의를 따를 필요는 없다. 천황제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식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뭉쳐 사는 개미사회에서나 가능한 민주주의의 일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야 그게 잘 사는 것이다. 평등한 인격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기에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벤츠가 있어도 타워 펠리스 꼭대기에 않아 있어도 인간은 친구와 친척 그리고 이웃이 없이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 독재의 그늘 아래서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독재를 했어도 대한민국을 잘살게 해 주었다는 박정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 뿐이다. 그리고 이를 여전히 영웅으로 부활시키는 대중들의 심리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의식일 뿐이다.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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