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8월 15일
1945년 8월 15일. 새벽 5시경, 전시 일본 내각의 마지막 육상(陸相)이자 육군의 최고 책임자인 아나미 고레치카 대장이 거실에서 궁성을 향한 채 할복 자결했습니다. ‘이 한 죽음으로써 큰 죄를 사과해 올리나이다라는 간결한 유서를 남긴 채. 그날 일본 열도는 충격과 좌절, 슬픔과 분노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정오에 쇼와(昭和)천황이 녹음으로 내보낸 포츠담 선언 수락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 방송이 청천벽력처럼 일본인의 가슴을 내리친 것입니다.
‘패전’ 또는 ‘항복’이라는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그것이 처참한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아나미 육상에 이어 제5항공함대 사령관 우가키 마도무 중장은 이날 오후 스이세이(慧星) 전투기 9대에 18명의 대원을 태우고 오이타(大分)비행장에서 출격했습니다. 저녁7시 24분 오키나와 상공에서 ‘적 항공모함이 보인다. 우리는 필중(必中)을 기하며 돌입한다’는 전파를 마지막으로 산화했습니다. 우가키 중장의 자결인 동시에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최후의 특공 공격이었습니다. 다음날인 16일 새벽 가미가제(神風)특공대 창시자인 오니시 다키지로 해군 중장이 관저에서 할복했습니다. 유서에는 ‘특공의 영령들에게 아뢰노라. 잘 싸워 주었다. 나는 죽음으로써 옛 부하와 그 유족들에게 사과하고자 한다’는 사죄의 말을 남겼습니다. 전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일본 군부에서 패전 후 자결한 군인은 원수 계급에서 일등병에 이르기까지 모두 568명. 전몰자 묘원의 봉사(俸仕)이사장 누카다 야스시의 ‘세기의 자결’이란 책에 실린 기록입니다.
그들의 유서에는 태반이 ‘천황폐하 만세’나 ‘황국의 영원한 번영’을 기원하며 자신의 육신을 바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인에게 자결(自決)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들은 인생의 막다른 벽에 부딪혀, 그 어디에도 살 길이 없고, 노력해 갈 힘도 없다고 느낀 끝에 행하는 자살(自殺)과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신이 보우하는 신국(神國)을 영원히 보전하겠다는 헌신의 염원으로 결행하는 자결이야말로 일본정신의 정수라고 미화하고 있습니다.
그 자결은 패전의 허탈과 자괴감으로 감행되기 이전에도 태평양전쟁 말기 전장 곳곳에서 릴레이처럼 이어졌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에 이어 일본 육군의 첫 패배지인 과달카날 섬, 사이판 섬, 레이테 섬, 이오지마 섬, 오키나와 섬으로 연달아 패퇴한 일본군의 옥쇄(玉碎)라는 이름의 최후 결전이 그것입니다. 연합군의 막대한 인력과 무기의 위력에 밀려나기 시작한 일본군은 일당십살(一當十殺)의 독기로 야습과 육탄돌격을 감행하다 최후의 순간에는 할복 또는 청산가리 복용, 수류탄 자폭으로 항복을 대신했습니다. 항복은커녕 불나비처럼 덤벼드는 그들의 자살공격에 미군은 전쟁에 이기면서도 공포의 전율에 몸서리쳐야 했습니다.
생명을 가볍게 보는 일본군은 오늘날 이슬람권의 자살폭탄보다 더한 가미가제 특공대와 신라이(神雷) 및 인간 어뢰 카이덴 부대를 창설하여 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부조종사 대신 폭탄을 두 배 실은 전투기로 적함에 돌격하는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은 천황이 하사한 국화주 한 잔을 마시고는 용약 출격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신라이는 머리 부분에 1,800킬로그램의 폭탄을 장전한 1인승 소형 비행기로, 모기(母機) 배 밑에 매달려 가다가 투하되는 특공 병기입니다. 모기가 공격 목표 20,000미터 상공에서 떨어뜨리면 로켓 분사식 소형기는 조종사와 함께 돌진합니다. 한 대가 명중하면 함정 한 척은 확실히 격침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1억 일본인(태평양전쟁 당시 인구)이 몸을 던져<挺身> 귀신이나 짐승<鬼畜>같은 미국과 영국 등에 대항한, 생사를 초월한 정신의 구심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천황이란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눌려 항복을 논의하면서 끝내 지키려 한 것이 천황제 존속이었던 점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천황은 ‘만물을 지배하는 황제’로 중국의 당나라 고종(高宗)이 딱 한 번 썼습니다. 이것을 일본에서는 역대 군주의 칭호로 사용해 왔으며,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국정을 장악하였습니다. 20세기 초 헌법학자 미노베 다쓰키치의 천황 기관설(機關說)이 한때 공인되기도 했으나 군부에 의해 반 국체적 주장으로 몰려 사그라졌습니다.
그러니만큼 천황이 내린 결정을 성단(聖斷)이라고 하여 무릎을 꿇고 호읍(號泣)하며 절대 복종해 온 것이 일본인의 특성입니다. 항복 선언 직전 본토결전(本土決戰)을 외치며 쿠데타까지 모의했던 소장 장교들을 잠재운 것이 성단입니다. 항복 후 본토와 만주, 중국, 동남아 지역에 남아 있던 270만 일본군이 고분고분하게 무장해제를 당한 것도 성단에 의한 것입니다. 천황은 일본인을 하나로 묶는 끈입니다.
오족협화(五族協和)니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같은 기치를 내건 침략전쟁과 서구 국가의 식민, 수탈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그들은 성전(聖戰)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면서도 731부대의 인간 생체실험, 한국 여성을 성노예로 만든 정신대, 쇠붙이 공출, 학도병과 민간인 보국대 징집 같은 자신들이 저지른 잔인한 짓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역부족으로 수락한 무조건 항복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패전이 아닌 종전(終戰)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 30여 년 만에 세계 제2경제대국으로 일어선 일본. 지난해 3월 동북부 지방을 덮친 쓰나미 참화 와중에도 똑 부러지게 질서를 지키는 일본인, 후쿠시마 원전 폭발을 계기로 모든 원자력 발전을 중단시키자 철저하게 절전 지침을 지키는 그들의 피에는 아직도 생사일여(生死一如)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관념이 배어 흐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 더운 여름에 장황하게 일본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그 8월이 우리에게도 감격이자 환희의 달이기 때문입니다. “흙 다시 만져 보자 / 바닷물도 춤을 춘다… 이 날이 40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 길이길이 빛내자 이 나라 이 겨레” 이 나라를 무궁하게 빛내고 꽃피울 한국의 정신, 그리고 한국의 구심점은 무엇일까 숙고해 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글/김흥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그림/ 순이덕수 작, '파도'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