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경 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이 멋진 한 세상을 그렇게…
동시대인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던가? 이 세상에 같은 시기에 함께 왔다가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결코 우주 바다 속의 고아가 아니다. 아무리 고독하고 우울해도 대문 밖만 나서면 사람들 천지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내 사람’은 아닌 것이다. 나와 가치관이 맞고, 삶의 지향하는 바가 같을 때 진정한 도반이며 친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냐?’ 하고 책을 낸 사람도 있었다.(『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전우익 作)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인데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깨닫고 모든 만물과 융화하는 삶. 그렇다! 더불어 잘 살아야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닌데, 그게 여간 도 닦는 일이어야 말이지.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산다는 자체만으로 고통을 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으니까. 그토록 ‘웬수’ 같은 사람도 결국은 영혼의 먼지가 되어 우주의 사막을 떠돌겠거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것을.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안철수 어록’의 한 구절이다. 도통한 양반 같지 아니한가. 이왕 세상에 왔으니 멋있게 살다 가자는 얘기. “아침에도 멋지고 저녁에도 멋지다!” 정녕 멋지기 때문에 이 세상에 놀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문인 김려와 이옥의 이야기다. 자신의 문학적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문장을 짓다가 극적인 삶을 살다간 친구의 글을 모아서 문집을 만들어주는 사연도 극적이다.
설흔의『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에서 정조 시대에 있었던 문체반정(文體反正)의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두 문장가의 삶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아시디시피 ‘문체반정’이 단지 유생들의 문장 표현을 가지고 탄압했다기보다는 당대의 정치이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외래문물 유입을 비롯해 새로운 지식정보에 대한 시대적 요구의 물꼬가 트이는 과정적인 절차였으리라. 성균관에서 수학했던 두 사람이 운명의 갈림길에서 서로를 외면하며 헤어졌으나 차후에 글로써 교감을 이루는 지점에서 범우주적인 신뢰와 사랑이 재현된다.
김려의 문장이 사도의 글이라 하여 왕에게 내침을 당해 유배를 가는 장면에서는, 때가 마침 겨울 이 맘 때쯤 의정부 다락원을 지나 양주로 가는 경유지, 고독하고 서러운 길에서는 지금의 우리 동네를 보는 것 같아 친근감이 더욱 솟아난다. 고작 200여 년 전의 풍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배의 길은 배움의 길이었다.” 사상적으로 비교적 온건했던 김려가 유배지에서 나름 신산고초를 겪고는 “방 안에 틀어박혀 음풍농월하는 따위의 거짓된 글 따위는 결코 짓지 않을 터”라고 울분을 토하는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한때 필자와 가까운 경계의 동시대인들도 그랬었다. 글로써 대단한 사회참여를 하겠다는 의지가 하도 강해서 그 옆에만 가도 툭툭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으니까. 글이라는 게 때에 따라서는 무기와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목도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선인 이옥과 김려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오늘날의 작가 지망생들은 글이 곧 부(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에 매달리고 있다. 이야기, 글이 곧 돈이다! 나도 이렇게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채찍질한다. 김려는 친구 이옥에게 “글은 물이요, 밥이요, 공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아생존이라는 일차적인 이유로 글을 쓰는 문학도들에게 거금의 문학상금을 운운하며 당근을 내미는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다.
“임금이 자네를 왜 그렇게 못 마땅하게 여겼는지 알 것 같네. 천 명, 만 명 하나하나에 기울이는 자네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야.” “그랬겠지. … 그 달빛 같은 희미한 이념의 힘만으로 세상을 다스리려 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건 언뜻 보면 똑같아 보이나 실상은 하나하나가 다른, 각자에겐 각자가 전부인 사람들이라네.” 이옥과 김려의 대화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제행무상을 외친다.
동시대인으로 만났다가 조금 먼저 간 그 누구 때문에 지금 온 나라 안팎이 긴장하고 있다. 사람도 한 때, 풀도 한 철이라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옛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는 선가의 말로는 도저히 누를 수 없는 이 수선한 마음들. ‘이 세상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멋지지 않았으면 와 보지도 않았을 거’라는 김려와 이옥의 말이 귓속에 콕 박혀온다.
황영경 교수의...
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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