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빛을 닮은 눈동자를 보셨나요?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이제 자꾸 먼저 끊으시려고 한다. “그래, 끊자…” 어머니의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전에는 내가 먼저 “엄마, 빨리 끊어요.”라고 재촉했었다. 나는 늘 바빴다. 엄마와 전화 통화조차도 제대로 나누지 못할 정도로, 정말 그렇게 바빴나? 친구들과 긴 수다는 잘도 떨면서 어머니에게는 항상 인색했었다.
그렇지, 어머니께도 뭔가 바쁜 일이 있겠지? 딸과 통화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이고 중요한 무엇이 있을 테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늘 바쁜 딸이 모처럼 전화했는데…. 이게 다 부메랑이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갈망을 모른 척 외면한 대가로 이제 내가 어머니로부터 내침을 당하는가보다.
“그쪽은 내 딸을 닮았네요.” “엄마, 맞아요. 제가 엄마 딸이에요.” “내 딸이라면 왜 내 곁에 있지 않니? 내가 키우지 않아? 누군가 널 데려다 키우는 거니?” 타이완 작가 룽잉타이의 어머니에게 치매 증세가 있다. 딸을 못 알아보는 어머니의 아득한 눈동자가 저녁달처럼 자꾸만 내 뒤를 따라오는 것만 같다. 소멸해가는 부모의 삶을 지켜보아야 하는 딸의 심정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내 자신 또한 회환의 감정이 가슴을 탁 치고 올라온다. 『눈으로 하는 작별』에는 작가 룽잉타이가 겪어내는 가족 간의 이별 과정이 일상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있다.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눈으로부터 제일 먼저 시작되는 이별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골수에 아로새겨진 유전자 형성관계까지 청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 가족 앞에서는 바보도 천재도 없다.
“엄마, 제발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좀 마세요. 함께 외출하면 난처하다니까요.” 작가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외출할 때마다 지청구를 듣는다. 엄마의 시선을 따라 아름답고 신기한 세상을 익히던 그 꼬마 녀석, 이제 대학생인 된 그의 아들은 엄마에게 절대로 관대하지 않다. 엄마의 진정을 잔소리대왕의 고장 난 녹음테이프쯤으로 여긴다.
그나마 갖다버리지 않는 게 다행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집밖에 나와 세상 구경하는 다섯 살짜리 꼬마처럼 왜 그러세요?” 아직도 감수성이 활화산같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엄마는 주책바가지일 뿐이다. 아, 이게 다 부메랑이다. 이상적으로 비치지 않았던 우리들 부모의 모습. 그런데 그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난 엄마만 생각하면 우렁찬 목소리가 기억 나.” 영화 속의 엄마들처럼 교양 있고 우아한 풍모의 엄마를 갖지 못했던 세대들은 뒤늦게야 깨닫는다. “그래, 피난살이를 겪으면서 아이 넷을 낳아 그 뒤치다꺼리를 다 했는데, 언제까지나 연약한 아가씨로 남을 수는 없었겠지.”
작가가 어머니와 쇼핑을 나와서 겪는 상황에서 나는 그만 허가 찔리고 만다. “엄마, 연세 때문에 굽 높은 신발은 안 돼요. 넘어져요. 넘어지면 큰일 나는 거 아시죠.” 딸의 잔소리에 응 응, 하면서도 화려한 하이힐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어머니에게 어이없어하는 작가의 모습이라니. “엄마, 미쳤어?”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는 그나 나나 어쩌면 그렇게 닮은꼴인지. 어머니는 그때 납작한 노인용 구두만 권하는 딸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저 어머니의 망가진 관절만을 배려했고, 아직도 처녀 같은 어머니의 마음은 완전 무시해 버린 내가 어떻게 ‘인간을 탐구’를 업으로 하는 작가란 말인가? 다음과 같이 길게 인용하는 대목은 우리들 모두가 뼈아프게 인식하고 대비해야 할 사안이다. 굳이 ‘노인복지’라고 말하지 말자!
“눈이 어두운 노인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한 글자체로 된 책을 파는 서점은 없나 두리번거린다. 여든 살은 옷을 어떻게 입고 무엇을 먹어야 하며, 어떤 운동이 알맞고 친구는 어디서 사귀며, 고독에 어떻게 대처하고 상실감은 어떻게 극복하며 어떻게 준비를… 자신의 떠남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책들만 진열해놓은 서점은 없을까? DVD를 살 때도 여든 살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영화 타이틀을 진열한 코너는 없는지 주의 깊게 살핀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당장 사들고 가서 엄마와 함께 보고 싶다는 그. 우리들도 그렇던가?
나날이 짙어지는 녹음이다. 빼곡한 이파리 사이사이로 삭제된 존재처럼 취급당하는 세대들, 안개 빛을 닮은 그들의 눈동자들이 아슴아슴 비쳐온다. 이거 혹시 정신착란 증세는 아니겠지.
황영경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황영경 교수(신흥대학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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