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를 기대하며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한 번이 토네이도 같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강력한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이 유럽을 강타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케이팝(K-POP,한국 대중가요) 콘서트가 그전의 영국의 비틀스 공연 못지않게 뜨거웠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나비효과’를 생각해봤다. 적나라한 하의실종 패션으로 팔랑거리던 ‘소녀시대’들과 길쭉한 팔다리로 말랑거리는 꽃미남 ‘소년부대’들만 뜨는 방송에 못마땅했었던 어르신들도 이참에 놀라셨을 것이다.
예술적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인들인데, 당신네 아들딸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대중가수들에게 빠져서 울고불고 하는 모양새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쩌다 변두리 밤무대에서나 한 번 볼까말까한 7080세대의 가수들, 그들과 함께 젊은 날을 보냈던 나로서는 그게 참, 궁금하다. 아무튼 이번에 케이팝 가수들의 화려한 날갯짓이 더 큰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해 본다.
만일 나비들이 없다면 지상의 그 많은 꽃들에게 누가 중매쟁이 노릇을 할까? 정부희의 책 『곤충의 밥상』에서는 흥미로운 나비 탐구가 펼쳐진다. ‘족도리풀 찾아 삼만 리’부분을 보자면, 애(아기)호랑나비 애벌레는 족도리풀꽃 이파리만 먹는다고 한다. 족도리풀은 벌레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매운맛이 나는 독성물질을 품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애호랑나비에게는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된다. 다른 벌레들은 접근도 못하는 위협물질을 유독 밝히는 애호랑나비, 그는 족도리풀꽃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족도리, 족두리? 이것은 옛날에 시집가는 신부들이 머리에 쓰던 화관이었다. 웨딩드레스에 세트로 딸린 면사포와 같은 것이다. 지금은 서양풍의 결혼식이 일반화되어 족두리는 이제 민속박물관이나 고전의상실 같은 데서나 귀하게 볼 수 있는 소품이 되었지만, 그 화려하면서도 앙증스런 화관의 멋은 미니멀리즘한 장식을 얹고 있는 현대식 면사포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혹시 애호랑나비는 전생의 신부를 못 잊어 지금껏 족도리풀꽃만을 찾아다니는 게 아닐까. 서정주의 시, <신부(新婦)>의 신랑처럼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줄행랑을 쳐버린 자신의 경거망동과 비겁함이 회한이 되었던가. 오줌이 급해서 방을 나가던 신랑은 돌쩌귀에 제 옷자락이 걸린 줄도 모르고, 그 새를 못 참고 잡아당기며 보채는 신부가 음탕하다고 소박을 놓고는 달아나 버렸으니. 그러고는 아주 먼 훗날 우연히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한 편의 시 속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여인의 비극이 들어있으니, 혹시 그것이 애호랑나비와 족도리풀꽃의 ‘스토리텔링’이 될 수도 있겠다. 자, 여기까지가 곤충학자 정부희의 책을 보면서 문학적 상상으로 풀어본 ‘나비효과’이다. 너무 빈약해서 죄송하다는 용서를 구하며.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다는 동양의 속설을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서양에서도 나비는 마음(정신)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어 ‘프시케(psyche)’는 영혼 또는 나비를 뜻하는데, 영어 '사이콜로지(psychology,심리학)'의 어원이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시케는 사랑의 신인 에로스(Eros)의 짝이 될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인간 여성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렇듯 나비라는 곤충은 사랑과 영혼을 관장하는 영물인 것이 분명하다. 실지로 1초에 100번씩이나 날개를 움직이는 나비도 있다고 하니, 그들의 그런 부지런함으로 지구의 생태계가 유지되는 게 아니겠는가.
처음의 사소한 요인이 예측할 수 없는 막대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나비효과, 그렇다면 내 손짓과 발짓, 눈빛 하나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대방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수업 때마다 내게로 집중된 학생들의 의식과 감각을 감당하려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애벌레에서 갓 나비로 우화된 존재들에게 무한한 세상의 가능성을 열어젖힐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하기에. 사시사철 나비들의 축제가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그리하여 더 많은 나비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황영경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있는 풍경’
황영경 교수(신흥대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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