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백수 이태백의 신세타령
며칠 전 신문기사 내용이다. 구두회사에서 월급200만원을 받고 영업직사원으로 일하던 김기철(31)씨는 몇 년 전 결혼을 미뤘다. 부모가 운영하던 식당이 문을 닫는 상태여서 동생 대학등록금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1년 등록금 700만원과 기숙사비 2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통장을 깼다.
동생은 “형, 미안해”라며 늘 괴로워하면서 가정교사, 백화점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했다. 몇 차례 휴학을 거쳐 지난해 간신히 졸업을 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취직이었다. 기업 등 여러 곳에 문을 두드렸건만 모두 낙방이다. 학원 강사, 무역회사경리 등 비정규직 일자리를 겨우 구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이런 자리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무직 상태다. “그동안 희생한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싶지만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다”며 “이럴 거면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은 왜 다녔는지 후회스럽다”고했다. 대학은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상아탑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이 너무 많고 전문 인력이 많이 필요한 나라가 아니다. 막말로 으쟁이 뜨쟁이 다 대학 가는데 결국 고등실업자만 키우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졸업자 80%가 대학을 진학하지만 국고로 지원하는 선진국도 대학진학율이 40%에 미친다. 독일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진학, 고등학교진학, 대학교진학을 엄격히 통제해야한다.
대학등록금 1000만원시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을 해도 취업을 못하는 청년실업자. 그들뿐만 아니라 온가족이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온 국민이 너도나도 대학만은 졸업해야겠다는 생각도 문제이지만 왜 꼭 대학을 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수는 332만 명이다. 전체인구 4875만명의 6.8%로 국민 14.7명중 1명이 대학생이다. 등록금을 대기위해 부모와 형제는 여행은커녕 취미생활 제대로 못하고 자식 좋은 자리 취직시키려고 노력했건만 취직하기란 바늘구멍에 낙타들어 가기보다 더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이 생겨 오늘날 이태백이란 말이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태백은 당나라에서 태어난 중국 최대의 시인이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자강을 따라 산동(山東) 산시(山西)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 방랑자 생활을 했다. 이태백은 부패한 당나라에 불만이 많았고 늘 정치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노렸다.
43세 때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라는 관직을 받았지만 한낱 궁정시인으로 현종의 곁에서 시만 쓰게 되자 하지장(賀知章)들과 술을 마시며 신세타령만 하다 현종의 눈에 벗어나 궁정에서 쫓겨난다. 시성(詩聖)두보는 이태백의 시에 대해 “붓끝이 움직이니 비바람이 놀라고, 시가 이뤄지니 귀신이 운다”고 극찬했다. 후세(后世)에 신선으로 추앙되는 이태백이지만 현실의 삶은 참 불행했다.
입신출세를 꿈꾸며 두 번이나 관직에 올랐지만 인정을 못 받고 두 번 다 쫓겨난다. 이태백의 시에는 공을 세운 뒤 물러나 산야에 묻히고자 하는 갈망과 좌절감이 적지 않게 배어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사오정’이 뭐지? 하고 물으면 말귀를 못 알아들어 엉뚱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던가 아니면 사십대와 오십에 퇴직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태백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시인, 신선, 양귀비, 방랑자 등이라고 대답하는 것 보다 ‘이십대 청년실업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오늘날 청년실업률이 10%를 오르내리고 구직포기 자가 늘어나면서 '이십대 태반이 백수건달'이라서 '이태백'이라는 말이 유행되었다.
백수건달만 해도 고기나 밥 대신 향(香)을 먹고 살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노래를 한다는 불교의 신 '건달비'에서 유래한 말이니 괜한 상상은 아닐터이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취직한 것은 '바늘구멍 통과하기'이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은 더 취직하기 힘들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연봉 1500만 원짜리 일자리만 주어져도 감지덕지할 사람이 많다. 기업에서 150억원만 인건비로 쓰면 청년실업자 1000명을 고용할 수 있다. 요즘 부산금융사태를 보면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나 정치인들이 영세민들이 못 먹고 못 입고 저축한 돈을 뒤로 다 빼돌리고 내배 째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볼 때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청년들의 일자리 수천 개, 수만 개를 정치인들이 훔쳐간 것이다. 정치인들이 청년들일자리 창출하는데 앞장서겠다고 외쳐대는 뻔뻔스러운 얼굴을 쳐다보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다. 소금, 간장, 기름 셋이서 고스톱을 치면 항상 기름이 돈을 다 잃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소금과 간장이 짜고 고스톱을 치기 때문이란다. 시거든 떫지나 말라고 했다. 가진 자들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 그렇더라도 청년들이여! 희망을 잃지 말라. 꿈이 없는 삶은 어두컴컴한 지하터널을 걷는 것과 같다. 용기를 잃지 말고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라. 청년들이여! 당신들이 진정한 이 나라의 주인임을 잊지 말자.
박태원-살며 살아가며
박태원(논설위원, 호원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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