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 현대사를 압축하는 단어가 있다면 서구 열강의 침략이후 구체화 된 근대화와 이를 추진해 왔던 군사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도 있다.
자생적 근대화라기보다는 일본제국주의가 선전하는 문명화 근대화의 기치를 수용하는 타율적 근대화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나의 시선으로 한반도와 세계를 바라보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나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의 내면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근대화의 장점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근대화 기치의 연장선상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명에 입각해서 지구가 둥글다고 교황에서 편지를 썼던 코페르니쿠스나 경험을 강조하면서 실사구시의 학문을 추구했던 베이컨이나 타율성 대신 자율성을 강조하며 인간의 성숙을 이야기 했던 칸트와 같은 서구 계몽주의 지성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바로 합리성에 따른 개개인의 성숙이었고, 일본의 근대화론자나 식민지 시절 한국 지성들도 위와 같은 서구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의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제국주의의 착취냐 아니면 식민지 근대화냐의 여부는 아직도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그나마 산업혁명 등을 비롯하여 서구 여러 나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해 놓은 유산을 학습한 결과이다.
일본의 근대화론자들이나 대한민국의 근대화론자들이 말하는 개화는 서양의 문명을 본보기로 하여 그와 똑같은 삶의 조건을 만드는 데 있었다. 열심히 서구를 따라온 결과로 이제는 우리의 이‘문명’이 다른 나라로 역수출되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세계에 새마을 운동을 전파하는 것이나 일본이나 프랑스의 소녀들이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분하는 것을 보면, 이제 한국도 근대화를 따라잡고 구한말 서구 열강이 보여준 것과는 달리 한류로 세계를 점령해 가는 느낌마저 든다. 이것이 김구선생이 말하는 문화적 지배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렇게 빨리빨리 서둘러 근대화를 진행하다 보니 같이 따라가야 할 정신문화가 과연 뒷받침되고 있는가 하는데 대한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문화 콘텐츠이든 한류이든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문명과 문화는 자율성과 합리성의 토대 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돈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자본주의 논리로 풀어갈 때 그것은 한류도 문화도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그저 팔아먹기 위한 생존전략 일뿐 오래가지 못한다. 천민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떤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민주화가 중요하다. 자유로운 표현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혹자는 유교적 위계질서가 한국의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만이 성숙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토대가 되며, 이렇게 될 때 한국은 서구 열강이 했던 제국주의의 속성을 벗어난 성숙한 문명창조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러한 새로운 문명창조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어려서부터 어른과 아이의 차별을 공식화 하여 교육받고, 학교를 다니면서는 선배 후배의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워야할 대학에서는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군대에 가서 새롭게 군사문화에 길들여진다.
군대 생활은 자주 술자리에서 영웅담으로 등장하고, 그리고 이러한 영웅담 하나 없는 사내는 사나이가 아닌 것처럼 간주되는 이 문화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개화(開花)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새로운 자생적 근대화를 수행해야 한다. 이 새로운 자생적 근대화의 요점은 군사문화의 제거이다.
군대를 다녀오면서 배운 위계질서에 입각한 줄 세우기 문화 그리고 이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따돌리기’가 없어져야 한다. 교회나 사업체나 대학선후배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군사문화가 숨어 있다.
지금까지 물질문명의 차원에서 잘 모방해왔듯이 이제 우리도 서구의 모델을 따라 정신문화의 핵심은 민주주의도 따라 해보자. 이 군사문화에서 벗어나려면 일차적으로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군대의 비중이 축소되거나 장기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
지금의 이 나라가 전쟁을 잠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인 휴전상태가 아니라, 평화로운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작금의 해병대 사건을 보면서, 보다 총체적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 볼 필요를 느낀다.
근대화와 군사문화
서기원(본지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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