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유난히도 자주오고 추위도 꺾일 줄 모르게 엄습하고 있다. 기분 좋고 하는 일이 바쁘고 즐거우면 세월도 빠르게 가련마는 되는 일이 없고 걱정꺼리가 많아지면 시간이 왜 그리 늦게 가는지. 사람의 맘이란 날씨만큼 변덕스러워 추위에 덩달아 얼어붙을 만큼 물가는 오르기만 하니 세상사가 편할 리 없다.
나 또한 나이 먹는 슬픔이 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만 눈이 내리면 추위에도 불구하고 눈을 맞으며 걸었던 낭만의 시절들이 있었건만 그리고 임이 그리워 밤새워 편지를 써서 그리움을 전하고 그리고 답장을 받아보고 삶의 기쁨을 누렸던 적이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아침 먹으면 저녁이 걱정이던 시절에 왜 그리도 우정과 사랑이 온통 나를 가득 채웠는지 배고픔을 몰랐었다.
공자님은 세 가지 기쁨 가운데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기쁘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不亦乎)” 하였지만 친구는 안 오더라도 편지라도 받아 보면 기쁨에 겨워 눈물도 흘렸었다. 연말 년 초가 되면 그리운 친구들에게 엽서 한 장 띄우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우표 값이 걱정이었지만 우체국으로 달려갔던 시절 필자는 수 십 통의 손수 쓴 엽서를 받는 기쁨으로 쾌히 답장을 보냈고 이사 갈 때마다 받은 편지가 가득 담긴 상자를 마치 보물 상자인 듯 지금도 갖고 다니고 있다.
내 존재감의 기억들, 기억이 넘쳐 추억이 되고 추억이 넘쳐 사는 기쁨이 충만했었다. 가난하지만 그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드리고 술 한 잔 걸치면 “가고파”를 부르며 목청을 돋았던 그때 뒷집 소녀에게 어떻게 하면 편지를 전달해서 내 맘을 전할까 가슴조이며 전전긍긍 고민했던 그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그 세월이 흘러가버려서 없는 게 아니라 그러한 풍토도 그런 풍경도 아니다.
인간 내면을 다 들어내어서 가슴 안에 있는 모든 감정들이 전파를 타고 날아가 버렸다. 감춰있어야 끌어내고 싶은데 발칵 뒤집어져서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으로 메일로 실시간 메시지를 보내고 인증 샷으로 확인을 하며, 가질 것 안가질 것 없이 소중한 감성을 묵살해버리고 문제 풀듯 모든 것이 조건적이다.
다시 말해 이기적이지도 못하면서 자기 성장만을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상대방을 이용의 대상이거나 득이 되어야만 소통하려고 한다. 나는 사는 동안 그런 흐름에 편승할 수도 없고 편승하고 싶지도 않아 답장이 오던 오지 않던 내 스스로 편지 봉투도 만들고 카드도 만들고 사연들도 사람마다 다르게 마치 내가 그 사람을 마주보고 말하듯 축복의 글을 쓴다.
그런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간혹 주소가 바뀌고 감정도 메마르고도 새삼스럽고 때에 따라서는 이상스럽기 조차한 편지 쓰기를 나는 매년 계속하고 있다. 일일이 바뀐 주소지를 확인하고 우편 번호를 찾아 적고 정성들여 예쁜 엽서를 만들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리게 되지만, 그간 만나고 회포를 풀었던 선배 후배 제자 친지들에게 정성들여 예쁜 카드 그림을 만들고 마음을 넣어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그 이상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사소한 기억의 단편들 뿐 이다. 언젠가는 스스럼없이 사라질 인생이며 길지 않은 여정에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디며 사는 동안의 희로애락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만의 행복한 조건들이다.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추억 때문에 살고 살아있는 동안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은 그것이 사소하다하더라도 최고의 기쁨일 수 있는 것이리라. 우체국에서 250원 짜리 우표를 봉투 위에 정성들여 붓치고 우편함에 넣은 뒤 돌아서는 나의 발길은 기쁨으로 행복하다. 나의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도 또한 기쁘고 행복하리라 생각하면서…….
250원짜리 사소한 기쁨을 위하여
글/무세중(통일예술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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