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달이 뜬다면
차일피일 미루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마치 마라톤 완주 같았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전3권,(두 권 정도의 분량이 각 한 권으로 묶여서 상당히 긴 소설이다.) 이 책은 2009년 당시 출판되기 전부터 ‘선인세 10억’이라는 소문으로 우리 출판계 안팎에서 화제가 되었다.
엄청난 거금을 미리 지불하면서까지 판권을 따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이 세인들의 입줄에 오르내렸던 것이다. 이런 경우를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라고 하여, 의도적으로 구설수를 유발해서 이목을 끄는 판매 전략의 한 방법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 그 출판사의 의도된 홍보 전략이라고 단정할만한 확실한 근거는 없었다. 단지 우리 출판계에서 유례가 없었던 일이기에 크게 부각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선뜻 집어 들지 못했던 데는 그러한 ‘잡음’도 한 몫을 했다. 과연 ‘10억’을 호가할만한 거창한 이야기인가, 하는 의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에 세 권을 모두 사서 읽고 난 후의 소감은 한 마디로 부럽다! 이거였다. 독서인구가 날로 줄어드는 판국에 이토록 가공할만한 이야기를 써서 많이 ‘팔아먹을’ 수만 있다면 작가로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노벨문학상? 아, 그렇지, 그게 남았겠지?
1984년의 시공간에서 두 개의 달이 뜨는 1Q84년의 세계로 이탈하여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인물들이 겪는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흥미진진하다. 소설의 결말에 가면 밤하늘의 달은 다시 그대로 하나가 떠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요? 이렇게 따지고 들자면 일상생활에 너무나 바쁘신 독자들에게 굳이 이 두꺼운 세 권짜리 소설『1Q84』를 거론할 필요는 없겠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이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두 개의 달’에 대한 여운은 내게 길게 남았다. 과연 밤하늘에서 달을 본 지가 언제 적이었던가? 이런 심심파적인 여유의 사치를 잠깐이나마 누릴 수 있다면 마라톤처럼 숨 가쁘게 달려온 독서의 효과가 아닐까.
만일 실지로 세상에 달이 두 개가 뜬다면? 그런 천재지변은 곧 대재앙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하나의 달이 뜨는 시스템으로 구축된 지구상의 인류의 생활방식 제도들을 모두 바꿔야 한다. 그런데 왜 이런 걸 상상해야 하지? 괜히 머리만 아프게. 그러나 머리통에 쥐가 날 때 상상력은 막강한 힘이 된다! 아주 단적인 예를 들자면, 돈 한 푼 안 들이고 머리만 잘 굴려서 지어내는 이야기가 자동차 몇 십만 대 만들어서 파는 매출액보다 훨씬 큰 수익금이 될 때 상상력은 곧 돈이 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영국의『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시리즈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다. 상상력의 극치인 그 판타지 이야기들이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걸 다시 영화로 만들어서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수출했으니 허무맹랑한 상상 속의 이야기를 어찌 무시할 것인가.
『1Q84』이야기 속 ‘두 개의 달’ 현상에서 어떤 숨은 진실을 찾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작가가 묘사하는 달의 모습은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늘이 준 등불로서 때로는 암흑의 세계를 환하게 비추어 사람들의 공포심을 달래주었다. 그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시간관념을 부여해 주었다.” 작가는 또 누구에게나 두 개의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어떠한 세계에 있건 가설과 사실을 가르는 선은 대개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 선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수밖에.”라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현대인 누구도 잘 올려다보지 않는 밤하늘에서 두 개의 달이 뜬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을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고대 설화나 전설 속에도 이런 이변의 이야기는 흔히 있었다. 요즘 뜨고 있는 미디어 콘텐츠란 것도 다 이런 황당무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 이건 전적으로 스토리의 힘이다. 소설 속의 세상에서는 불가능이 없다. 그래서 작가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신의 존재로까지 간주하기도 한다. 현실 속의 작가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찌질’하지만 말이다. 작가 지망생들이나 썩 잘 나가는 작가들 모두에게 누가 뭐라 해도 이미 세계적인 작가인 일본의 하루키는 선망의 대상이다. 우리나라에도 그처럼 뛰어난 이야기꾼 몇 명만 건재해 준다면 몇 백억 불 수출이 문제가 아닐 텐데. 그렇다면 이야기의 원천이 되는 그 ‘상상력’이 관건이다. 부동산이다, 주식이다, 이렇게 머리 굴리는 것도 다 상상이라면 상상! 아, 내일 밤, 만약에 두 개의 달이 뜬다면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황영경 교수의 문화 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황영경 교수(신흥대 문예창작과)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