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론(黨論)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정당이 특정 사안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가진 견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말은 어떤 명분과 철학을 담고 있는 말 같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특정 정당에서 주장하는 당론이 자칫 개인의 자유와 의견을 말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한 정당에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의견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정당이라도 뜻을 달리할 수 있는데, 마치 다른 의견을 주장하거나 다른 입장을 견지하면 곧바로 당을 해롭게 하는 행위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눈치 보기와 줄서기가 만연하게 된다.
예전에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가치가 주된 가치였던 적이 있었다. 개인을 죽이고 희생하여 공공의 일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은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가치이다. 사실 이러한 가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축구 등의 단체 게임이나 전쟁을 해야 하는 군대에서는 개인의 권리주장과 개인주의는 지향되어야 할 가치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누군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면 전체의 이익과 상충된다고 생각하였다. 최근의 중국에서의 여러 가지 운동을 억압하는 중국정부의 기조 또한 이러한 멸사봉공의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입장에서는 공익에 반대하는 사람을 인권운동가 혹은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인정할 수 없는 노릇 일 것이다. 물론 많은 인구의 중국이란 나라가 유지되려면 중국정부의 멸사봉공 정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간 시대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국가나 공익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지배 집단의 이데올로기일 뿐이고, 사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한다. 이것이 바로 활사개공(活私開公)의 정신이다. 활사개공이란 개인을 살려서 공공의 이익을 열어간다는 정신이다. 개인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주장과 인권을 살리는 것이 곧 공공의 가치라는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으며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을 무시하고 소수를 무시한 국가는 결코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 한나라당이 주도하여 날치기 통과를 하여 민심이 돌아서고 있음이 감지된다. 당론이라는 것을 정하지 말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개개인의 한 표를 있는 그대로 행사하도록 무기명 투표를 하면 문제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개인을 무시하고 집단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거가 날치기 통과이다. 당론이라는 것 자체를 없앴으면 좋겠다.
국회의원 각자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여 합의에 이르는 절차를 취했으면 좋겠다. 야당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 여당이었을 때와 다른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현재의 여당을 압박하는 모양새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인상을 준다. 대표적인 예로 한미FTA를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주당이 이제는 이것에 발목을 잡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원칙이나 명분도 없고 민주주의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절차도 없는 이 나라 국회에서 민초들이 믿고 희망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제 자신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소리와 자신의 정당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쇼들이 보인다. 바야흐로 이제는 때가 되니 신경써야할 민심이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복지라는 아젠다로 헤쳐모여의 깃발을 드는 모습이나, 민심을 대변하는 야당의 목소리인양 외쳐대는 제법 호기 있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제 차기 총선이 다가오니 민심이 두렵긴 두려운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수기 역할을 하던 여당이 제법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처럼 호기롭다. 모르긴 몰라도 특정 지역에 깃발만 꽂으면 되는 텃밭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수도권에 있는 의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이번에는 당론을 없애고 그야말로 모두가 한 표로 민심을 대변하는 국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한다.
어떤 사람은 야당이 연합하는 ‘민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번 총선을 당론이 없는, 즉 당적이 없는 무소속 의원을 대거 국회에 보내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소속이면 무조건 선택하는 선거 혁명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당(론)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국회가 아니라, 홀로서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국회를 만들면 어떨까 한다.
지금까지의 당들은 너무 오래 했다. 구약성서의 전통에 따르면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서 7년에 한번 씩 땅과 노예를 쉬게 하는 희년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제 대한민국 국회라는 땅을 갈아엎어서 ‘열심히’ 일한 의원들 잠시 쉬게 하면 어떨까?
생각해봅시다-당론과 무소속 혁명
서기원/경기도의료원 원목,본지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