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최고이다. 돈은 어떻게 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돈을 좋은 일을 위해 쓰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못 쓴다. 그렇다면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좋은가.
첫째, 돈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내가 잘 아는 경기도의 가장 갑부가 있는데 그 분은 수천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지만, 평생 머리를 짧게 자르고 더부룩하게 기른다. 그 이유는 이발비 몇 천원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절약하고 사는 것이 그 분은 몸에 밴 분이다. 그렇지만 그 분은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는 돈을 절대 아끼지 않는 분이시다.
절약하고 저축하는 습관은 엄청난 결실을 가져온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대국 10위에 들어 선 것은 우리 국민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절약 정신 때문이다. 6·25 전쟁 직후 우리나라와 국민은 너무 가난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이 너무 가난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만나러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아 갔었지만 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인정할 수 없다며 끝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그 때 미국은 쌀, 우유, 밀가루 등 우리나라에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가난한 한국에 돈을 빌려줄 나라는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지금은 독일)에 돈을 빌리러 대사를 파견하였다. 미국이 돈을 빌려주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했지만 이를 무릅쓰고 1억 4000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빌리는 조건으로 서독이 필요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어야 했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혀야 했다. 광부를 500명 뽑는데 4만 6천명이 몰려 왔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렸을까? 일자리가 없고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 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닦는 일이었다고 한다. 어린 간호사들은 무섭고 징그럽고 더러운 시체를 하루 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m가 넘은 땅 속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는 악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그 때 그 모습을 본 서독 방송, 신문들은 한국 사람들을 대단히 근면한 민족이라고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몇 년 뒤 서독 대통령의 초대로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사정으로 대통령이 전용기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우리나라 입장을 알고 서독은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서독에 도착한 고(故) 박 대통령과 서독대통령은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강당에 들어갔다. 작업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으며,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는 너무 목이 메어 애국가를 부를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눈물에 잠겨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도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는 광부와 간호사들은 모두 울면서 “어머니! 어머니!”하며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고 한다. 고(故) 육영수 여사는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함께 울면서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위로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뤼브케 서독대통령도 거기에 모인 양국 대표들도 모두 다 울고 있었다. 떠나는 박대통령에게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박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들고 울고 또 울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박대통령이 계속 눈물을 흘리자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주겠다!”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지금도 필자는 그 상황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당시 한국은 자원도 없고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우리나라는 76불이었다. 북한은 당시 우리나라보다 부자였다. 1964년 드디어 국민소득 100달러를 달성했다. 이 100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단군 할아버지 때부터 무려 4300년 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동네마다 엿장수들이 돌아다니며 “머리카락 파세요! 머리카락 파세요!”라고 외치고 다니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사러 다녔다. 가난한 국가에서 머리카락을 모아 가발을 만들어 수출을 했다. 머리카락 팔아서 쌀을 사고, 학비를 보탰던 시절을 경험했다.
1년 뒤인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세계인들은 우리나라를 보고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했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하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시계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TV셋트, 냉장고, 세탁기도 없고, 전화도 없었다. 물론 신문 보는 집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이 양말을 꿰매신고, 바지도 꿰매 입고, 오직 후손들을 위해 절약하고 또 절약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오늘날과 같은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젊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피땀 흘리고, 외국에서 시체를 닦고, 1000m 지하에서 연탄을 캐고, 월남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벌어온 그 돈으로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이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조상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근검하고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배워야 한다.
지금 북한을 보고, 필리핀을 보라. 얼마나 가난한가. 또 베트남은 그때 당시 나무 밑 그늘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지금도 나무 그늘 밑에서 머리를 깎고 있지 않은가? 요즘 젊은이들은 돈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가난하지 않으려면 종자(種子)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먹어서는 안 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배고프고 힘들어도 벽에 걸린 옥수수 종자나 땅속에 파묻어 놓은 감자 종자는 먹지 않았다. 부자가 되려면 첫째, 검약하고 둘째 저축, 셋째 사치(奢侈) 하지 말고, 넷째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사람들은 부자(富者)가 될 수 있다고 감히 자신 있게 말해 본다.
박태원-살며 살아가며
박태원(논설위원, 호원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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