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샤갈의 마을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지금 서울 시립미술관에서는 색체의 마술사라고 일컬어지는 화가 샤갈의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색감을 자유자재로 낼 수 있다면 그건 마술사라기보다는 신의 경지가 아닐까. 샤갈이 만일 살아있다면 그는 어떤 색으로 이 비감한 시절을 물들일까?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고 시인은 다시 쓰고 있는데 마치 요즘의 경악스런 사태를 빗대어 표현한 것만 같다. 남녘으로부터 봄소식은 고사하고 불길한 공포의 뉴스만 올라온다. 차라리 3월에 눈사태라도 난다면 그보다는 나을까? 눈(雪) 얘기가 나오면 빠뜨릴 수 없는 소설이 있다. 일찍이 일본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 <설국>이다. 그 작품의 배경 무대인 니가타 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설국> 때문에 유명 관광명소가 된 그 곳이 초토화될 수도? 어째 이런 일이?
해마다 겨울이 되면 <설국>에 한 번씩 빠지고는 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도 허무의 관조가 짙게 배인 눈 쌓인 고장의 풍경이 머릿속에 훤하게 그려지고는 했다. 그만큼 <설국>은 자연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설국>을 몇 번씩 읽어도 “모든 게 흩어지고 말지.”라는 이 한 마디만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무위도식하면서 온천 지방을 유람하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이다. 직업적인 접대부인 게이샤 생활을 하는 젊은 여성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가라앉은 앙금 같은 허무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년의 남자. 그처럼 밥벌이에서 해방되어 여생을 즐길 수만 있다면, 그는 현대인이 추구하는 대표적인 모델 인물이리라.
허무하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 확신이 없기에 차라리 다 무화(無化)시키고 싶은 심리가 허무주의를 키워내는 건 아닐까. 예술작품에 배어 있는 허무주의는 매혹적일지 몰라도 현실세계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이 세상 것이 다 성에 차지 않으니 욕구불만이 되풀이 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상화된 안정이나 행복을 더 갈구하게 된다. 게임이나 만화 속의 아바타 같은 존재들에게 빠져들기도 한다. 실체가 없는 추상명사일수록 우리를 더욱 매혹시킨다. 사랑, 평화, 희망 등, 이런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에 기대를 걸었다가 절망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낱말이 품고 있는 ‘향정신성’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고는 이 세상을 또한 살아갈 수가 없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에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한국의 시인 김춘수는 그래도 따듯하고 희망적이다. 3월의 폭설을 축복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르크 샤갈의 화집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허공을 날아가거나 휘장처럼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구도의 그림이 몇 점 눈에 띈다. 이는 환희와 자유, 방랑 등으로 해석되는데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화가 자신의 주장과 연관된 듯도 하다. 그는 당대에 유행하는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하였기에 오히려 독창적이고 자유자재한 색감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인 러시아에서도 이방인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는 “우리네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깔은 바로 사랑의 색”이라고 말했다. 그가 색채의 마술사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런 확고한 작가적인 신념 때문이었으리라. 사랑이라는 추상의 색상도 화가 샤갈에게는 뚜렷한 칼라가 되었다.
차라리 이 3월에 폭설이라도 한 바탕 푸지게 내렸으면 좋겠다. <설국>같이 눈에 파묻혀 적요한 세상, 그대로 한 폭의 그림으로 정지되었으면 좋겠다. 일본 열도에서 날아오는 실체도 잡히지 않는 백색 연기에 온 세계가 지금 떨고 있다. 샤갈이 살아있다면 아마 그 마술 같은 사랑의 색깔로 이 세상을 한 차원 초월된 곳으로 바꿔놓을 텐데. 몽환에 취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이 수상한 시절이여!
황영경교수의 문화오딧세이 '책이 있는 풍경'
황영경 교수/신흥대학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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