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은 스승이 필요치 않다
흥부전의 원형(原型)으로 보이는 형제간의 불화 이야기가 중국문헌 유양잡조(酉陽雜租)에 나온다. 신라의 귀족인 김씨의 선조 가운데 방이라는 형이, 어느 날 얹혀살던 아우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제발 지어먹고 살 곡물 씨앗이라도 달라고 형이 애걸하자 몰래 살짝 데쳐서 형에게 주었다. 싹이 돋을 리 없는 그 밭에서 유일하게 한 씨앗에서만 싹이 돋고 이삭 하나가 한 자 남짓씩이나 자랐다.
어느 날 새 한마리가 이 이삭을 물고 날아가는 것을 뒤쫓아 갔더니 천동(天童)들이 치기만 하면 원하는 것이 나오는 금방망이를 갖고 잔치를 벌이고 있는 곳이었다. 밤이 늦어지자 천동(天童)들이 놓고 간 그 금방망이를 들고 돌아 온 형은 장난삼아 금 나오라 뚝딱! 했더니 금이 쏟아지고, 돈 나와라 뚝딱! 했더니 돈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형은 갑자기 온 나라에서 제일가는 거부(巨富)가 되었다.
이에 샘이 난 동생이 곡물 씨앗을 살짝 데쳐 달라고 형에게 애원한다. 동생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입장이라 동생의 청(請)을 들어 주었더니 유일하게 돋아난 이삭을 새가 물고 간 것을 뒤쫓아 갔다가 귀신방망이에 얻어맞고 코를 석자나 잡아 빼어 쫓겨 온다.
형제간의 불화를 응징하는 동서양을 통튼 원조 설화요, 형제애의 비중이 남다른 우리나라 윤리 풍토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재물을 두고 갈라지기 쉬운 형제 사이를 극복한 화해 사례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가난한 두형제가 살면서 동생은 깊은 밤 형 몰래 자기네 볏단을 형네 볏단에 쌓아둔다. 낮에 형이 보니 볏단 쌓아둔 것이 똑같아야 되는데 자기네 볏단이 동생네 볏단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깊은 밤 볏단을 동생네에 쌓아둔다. 그러다 깊은 밤 두 형제는 볏단을 메고 가다가 서로 만나는 내용이다. 참 대견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또 서울한강 기슭에 투금탄 이라고 부르는 여울이 있다. 투금탄(投金灘)은 고려 때 외교의 명신(名臣)이요 ‘이화에 월백하고’를 남긴 문인 이조년 형제의 고사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가 길을 걷다가 동생이 우연히 금덩이 둘을 주워 하나씩 나눠 가졌는데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면서 동생이 갑자기 금덩이를 던졌다.
놀란 형이 동생에게 “도대체 그 귀한 황금덩어리를 물에 던지다니 무슨 짓이냐?”하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부끄러운 기색을 띠며 “제가 평소 형님을 위하는 마음이 두터웠는데, 형님에게 금덩어리를 나눠준 뒤로 자꾸 사특한 생각이 은근히 들어 금덩어리로 인해 형제간의 우애가 금이 갈 것 같기에 미련 없이 물에 던졌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던 형도 “네 말이 옳도다”하고는 금덩이를 물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복(福)은 겸손하고 남에게 양보할 때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의좋은 형제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삶을 우리도 배워야 하겠다. 예부터 덕무상사(德無常師)라는 말이 있다. 덕은 언제나 스승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이 세상에 딱 한번 초대를 받아 살다가 언젠가는 저세상으로 가게 되어 있다. 자식들이 훌륭하게 된 어떤 집안을 보더라도 그 집안의 조상들이 남에게 덕을 많이 베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려운 사람에게 덕을 많이 베푼 집안일수록 그 후손들이 잘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려면 덕을 베푸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너나 할 것 없이 매일매일 덕을 베풀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행동으로 옮길 때 행복한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 자식들도 부모의 덕행을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넉넉한 삶을 살아가자.
박태원-살며 살아가며
박태원(논설위원,호원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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