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20세기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는 정의의 문제를 깊게 체계적으로 다룬 철학자이다. 롤스는 쾌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특별히 그가 관심한 것은 분배의 정의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부의 축적에서부터 그것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공정하게 할 것인가가 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는 정의 원칙 두 가지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는 평등 의 원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허용하되, ‘최소 수혜자’에 그 불평등을 보상할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하다는 차등의 원칙이다. 롤스의 두 번째 이 차등원칙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구체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요즘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그 구체적인 핵심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문에 나온 기사만으로 생각해 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다. 대기업이 경제활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은 만큼 일정 퍼센트의 이익을 중소기업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의무적으로 변호사나 법학교수를 ‘준법지원인’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동반성장의 내용은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또 다른 형태의 세금처럼 여겨질 수 있다. 또한 대기업이 흑자를 내지 못하고 적자를 낼 경우에도 과연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하느냐 하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불공정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될 수 있다. 대기업의 하청을 맡은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터무니없이 싼값에 조달했던 것을 이러한 지원을 통해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공정 경쟁에서 언제나 대기업에 뒤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발 이익을 통한 이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지역을 개발하여 이익을 얻었다면 그 이익의 일부를 그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신도시가 건설이 되면, 건설사는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 갑자기 비싸진 아파트에 들어갈 수도 없고 또 들어가려면 융자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공정성에 위배된다. 신도시 개발이 타당성을 얻으려면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분배의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불균형으로 인해 동의를 얻기도 힘들뿐더러 동반성장은 불가능한 것이다.
대기업이 이익을 창출하거나 건설사가 이익을 얻으려면 국가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가가 외국 기업과의 외교관계를 체결할 때 반드시 국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어떤 것은 양보하지 않고, 어떤 것은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전체적으로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서 대기업에 혜택을 주었다면, 그 혜택을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균형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사회통합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의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법조인을 대기업에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이 과연 투명하게 분배를 하는지를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정의의 원칙 자체가 자본주의적 체제와 모순되고, 기업의 이윤확대 원리에도 위반된다고 말하고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방식이며 정의롭지 못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번 돈을 가난한 자나 어려운 기업에게 나누어줄 윤리적 의무가 있느냐에 대해 반문할 것이고, 일해서 많이 번만큼 많이 지불해야 한다고 하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는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반론도 가능하다. 개인 기업이 성공하고 돈을 잘 버는 것은 결국 국민 전체의 이익과 부합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특정한 기업만 배불리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 그 기업 구성원들이나 국민들은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기 때문에 결국 근본에서부터 동의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이 이제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하고, 동반성장의 기치아래 모일 때가 되었다.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분배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차등을 인정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나가야 기업이든 국가 경제든 튼튼한 토대위에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정의이다.
서기원-생각해봅시다
서기원(논설위원, 의정부의료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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