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태어난 그는...
봄은 모든 여신들이 일제히 출산을 하는 계절이다. 온 몸의 숨구멍을 열고 대지는 그 거룩한 생산 과정을 전부 치러낸다. 산모의 진통처럼 신음과 외마디 비명이 멀리 아지랑이 속에 흩어지는 봄날, 그래서 산마루를 넘나드는 봄바람은 몹시도 경망스럽게 울부짖는 모양이다. 처절한 몸부림 뒤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 같은 꽃망울들. 아무도 거역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에서 잘 나가는 젊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인 김연수가 4월생이라고 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봄꽃에 대단히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 났다.”는 그의 풋풋한 고백에 독자들의 가슴이 녹는다. 꽃소식이 들려오면 남쪽지방으로 떠난다는 그 작가가 한없이 부러운 나는 4월만 되면 꼭 감기몸살을 호되게 앓는다. 내가 꽃놀이 한 번 못가고 ‘잔인한’ 4월을 보내는 것도 다 그 유전자 때문인가 보다. 어쩌면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봄을 청승스럽게 배웠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진달래를 보면 늘 눈물이 난다고 한다. 봄에 너를 배었는데 날마다 참꽃을 따먹으며 긴긴 해를 견뎠느니라…. 내게 봄이란 계절은 늘 결핍과 빈혈 같은 불충분한 관념으로 먼저 찾아온다. 그래도 나는 늘 봄을 기다려왔다.
김연수 작가는 봄을 기다리면서 시집을 특히 많이 읽는다고 한다.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의 산문집『청춘의 문장들』에서 음미하고 있는 당시(唐詩)의 구절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소설 속에서 빛나고 있는 깊은 사유와 격조 있는 문장들의 근원을 짐작하게 된다. 문장이나 문체에도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주로 헌 책방에서 구했다는 고전 시가집들이 젊은 작가에게는 귀한 영양제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의 젊은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 속에서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고 일갈하고 있다. 그가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시는 정말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는 이런 시를 소리 내서 읽다가 보면 입에서 향기가 날 것 같다고도 한다.(독자 여러분도 향기가 나시는지요?)
주인이 집을 물가에 지은 뜻은/ 물고기도 나와서 거문고 소리를 들으라고(유득공, ‘부용산중 옛 생각에 잠겨’에서)
마침내 이 4월생 작가는 난초 그림에서 추사의 글을 발견하고는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이 자란다고,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하고 무릎을 친다. 아이고, 젊은 작가가 어찌 그리 신통한지! 70년생이면 그도 이제 중견인데, 나는 왜 그를 영원한 젊은 작가로 알고 있는지. 작가여, 언제나 젊어 있으시라!
흔히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문장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에서는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최상급의 표현을 쓰고 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나무뿌리를 깨우니” 우리는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었다고 시인은 회고한다. 엘리엇 덕분에 우리는 ‘잔인하다’는 말을 너무 친밀하게 쓰고 있다. 4월이 오면,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건재할 수 있었다는 집단적인 채무감 때문에 그렇게 독한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는가 보다.
산길에서 쓰러져 누워있는 아름드리 나무둥치를 보았다. 나무의 살은 벌써 푸슬푸슬 떨어져 나와 한 줌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생물은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의해 돌고 돌아 육신의 생이 거듭된다고 한다. 부러져 떨어진 삭정이 가지에게도 나는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숨 쉬는 공기와 발 딛는 땅의 흙이 모두 어떤 목숨들이 벗어 놓은 허물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서라기보다, 먼저 떠나는 생명들에 대한 예의? 조등이 걸린 집 앞을 지나가거나 장의차가 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잠깐 묵연함 같은 게 아니었을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모든 존재에게 지워진 숙명이 아닌가. 꼭 환생의 종교를 믿어서가 아니다. 이 끊을 수 없는 생의 순환 고리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는 ‘생태 순환론’이다. 옷을 빨아 입듯이, 방청소와 설거지를 하듯이 나도 새 봄을 맞고 싶다. 해마다 그렇게 정갈하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
황영경 교수의 문화오딧세이'책이 있는 풍경'
글/황영경 교수(신흥대학 문예창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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