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생각해 봅시다
“가족과 함께 잘 살고 싶어서 한국에 왔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드러낸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그 가운데 알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알리가 연기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극 중에서 미등록 체류 상태에 놓여 있다가, 산업재해를 입고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딱한 사정에 놓인 그에게 산재 적용이 가능한가란 기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러한 이목이 우리 옆에 있는 알리에게도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21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는 H씨에게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자신의 성과 이름을 이야기하는 H씨 표정이 굳어 보입니다. 인터뷰를 하자며 세워놓은 카메라 때문인지 긴장해 보이는 눈치입니다. 그리고, 대뜸 묻지도 않은 미등록 체류에 대한 준비된 듯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딱딱한 인터뷰보단, H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카메라를 껐습니다. 그로 인해, 본 글은 인터뷰 전문이 아닌 H씨가 들려준 이야기로 풀어갑니다.
<2001년, 산업연수생으로 찾은 한국>
일자리가 없는 고향 사정은 H씨가 대학을 졸업해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을 이어, 가족을 부양하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의 첫 직장은 대구의 섬유공장이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낮과 밤을 교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 대가로 한 달에 60만 원을 받았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선주민의 월급, 반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은 연수생이라 가능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에 여느 이주노동자처럼 직장 이탈을 결심합니다. 서울로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하루 7만 원씩 받고 일을 합니다. 일하는 중에 허리를 다쳤지만, 보험이 없는 상태라 치료에 소홀했습니다. 그때 다친 허리 때문에 오늘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섬유공장에 비해 더 많은 돈을 고향에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002년, 유예된 출국>
산업 연수생 제도의 여러 문제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이 늘어납니다. 이에 정부는 이들의 자진 출국을 유도하는 대책을 발표합니다. 자진 신고를 하면 최장 1년간 출국을 유예한다는 말에 H씨도 참여합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정규화되면 불안함이 덜할 것입니다. 직장을 구해서, 1년 동안 일하다 고향에 돌아가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심이 오늘까지 미뤄지고 있습니다. 같은 고향, 선배에게 소개받은 염색공장 사장님과 마음이 맞아 20년째 한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주노동자와 둘이서 일을 하다, 지금은 혼자서 일합니다. 뜨거운 물에 냄새나는 화학 염료를 사용하는 일 특성상, 한국 사람과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그렇게 하루15~16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2012년, 가족의 탄생>
그렇게 10여년이 지나 서른이 된 그에게 같은 공동체 사람이 아내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가족을 이뤘고, 다음 해에 또 다른 가족을 맞이합니다. 행복했던 가정에 예견된 문제가 찾아옵니다. 그의 벌이에 비해 세 가족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았고, 미등록 체류 상태인 아들의 학업과 장래가 걱정되었습니다. 결국 그를 제외한 가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3살 된 아들이 인천공항에서 떠날 때 많이 울었습니다. 회사나 사는 곳에서 체류 조건 때문에 불편했던 적은 없습니다. 다른 공장 사장님과 싸우다가"고발하겠다"라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다만 조금 아파도 치료가 비싼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20년 동안 한 회사에 머물렀으니, 고참이라고 불립니다. 일도 잘하고, 주변 공장 및 거래처 사람들과 다 친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쩔수 없어 고향으로 혼자 떠나는 어린 아들 뒷 모습
<쉬는 게 편치 않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일이 줄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고 있습니다. 쉬는 게 편치 않습니다. 장사가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 없이 회사에 앉아 있는 날이 미안해서, 슬쩍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사장님에게 말을 하면 화를 냅니다. 내가 없으면 공장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스무 살 젊은 나이에 한국을 찾은 H는 이제 중년이 되었습니다.(중략)
오징어게임 제작사에서 알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한국에 온 것은 가족과 함께 잘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알리처럼, H씨도 가족 때문에 미등록 체류 상태를 무릅쓰고 이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다릅니다.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가족 만'이라도 잘 살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고 홀로 이곳에 남았습니다. 덕분에 모든 사람이 바라 마지않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일을 20년이나 미뤘습니다. 곱씹을수록 헛헛해지는 마음에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H씨와 식사를 청했습니다. H씨가 자주 가는 설렁탕 집에 가자고 합니다. 김치를 많이 먹고 싶을 때 찾는다는 그곳에 가기 위해 H씨와 함께 나섭니다.
지난달 19일, 미국 하원에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구제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처음 이들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논의하던 바에서는 후퇴했으나, 10년 전 입국 한 이들에게 5년간 추방유예와 노동카드 및 여행 허가증 등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축소된 구제안이라 하나, 우리 사정엔 그저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H씨와 같이 정주화 된 이들에 국내의 정책은 여전히 단속, 구금, 그리고 추방에 멈춰있습니다. 이 땅에 머문지 10년을 넘어 30년이 되어가는 정주자가 늘어가는 오늘, 이들에 대한 구제 정책을 내놓는 것이 인권에서도 선진국다운 면모가 아닐까 생각된다. 글/서울이주노동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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