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 신자 800여명 성지순례
<나바위 성지순례>
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 신자 800여명 성지순례
가까운 친구로부터 성지순례 제안을 받았다. 장소는 젓갈로 유명한 충남 ‘강경’ 인근의 나바위 성당이었다. 좀 생소하기는 했지만 순례자들의 순례 길에 동행(同行) 할 수 있다는 묘한 매력에 빠져 참가를 신청했다.
9월 24일 이른 5시 40분, 의정부역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순례객들의 반가운 인사 나눔이 큰 장터에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소속 교구 표지판 앞에 줄을 섰고,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은 연신 앞, 뒤로 오가며 출결을 체크하며 세례명이 새겨진 이름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 신자 800여명 성지순례
6시 40여분에 이르자 800여명의 순례객들은 예약한 12량의 기차객실로 자리를 옮겼고, 10여분이 지나자 기차는 의정부역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기내 방송을 통해 미사가 시작되자 떠들썩하던 객차는 한 순간 숙연해 지고, 차창 너머로 정겨운 풍경이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갔다. 1977년 내 나이 20, 의정부에서 징집 되 의정부역에서 논산으로 입영열차를 타고 가던 생각이 났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군중(?)을 헤치고 계란과 바카스를 구입해 시멘트 봉지에 넣어줬던 어머니 모습이 눈시울을 불킨다.
3시간 남짓 달리던 기차는 목적지 강경역 도착을 알렸고, 이내 우리들은 강경 시내를 가로 질러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소재 나바위 성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따가운 늦더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800여명의 긴 순례 행렬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향한 히브리민족의 출애굽을 연상케 했다.
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 신자 800여명 성지순례
정겨운 강경역에서 젓갈 장터를 빠져나와 강경포구를 뒤로하고 금강을 끼고 남쪽으로 향하니 강경황산포구 등대가 나타났다. 예전에는 원산과 함께 조선 2대 포구의 명성을 날렸지만 지금은 등대만이 외롭게 남아 있었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지나 뚝방을 뒤로하고 논, 밭이 있는 시골 들녘에 들어서니 멀리 나바위 성지를 품은 화산(華山)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산은 산의 절경에 감탄한 옛 선비 송시열이 이름을 화산이라고 지었다고 전해 오고 있다. 나바위란 우리말 표기로 광장이란 뜻으로 화산 정상에 큰 바위(너럭바위)를 가리킨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나바위 성지 입구에 도착하니 김대건 신부 일행이 도착한 표시판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다.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자신의 조국 선교를 위해 외국인 신부와 신도 11명이 첫 발을 내려놓은 곳이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역사의 현장에 섰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감내하고 생명을 담보한 모진 풍랑 속에서도 김대건 신부의 복음전파의 열정에 머리가 숙여진다.
김대건 신부는 1836년 15세의 나이로 중국으로 건너가 마카오에서 사제수업을 마치고, 1845년 한양(서울) 선교를 위해 중국에서 목선을 타고 출발한다. 그러나 폭우와 풍랑을 만나 제주도 용수리까지 밀려갔으나 다시 재정비하여 북상하던 중, 반파 상태의 배로 더 이상 갈 수 없어 당시 서해 최대포구였던 강경인근 나바위에 상륙하게 되었다.
나바위 성지의 중심은 성당이다. 1897년에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1906년 공사를 시작하여 1907년에 완공했다.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하고, 목수는 중국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건축양식은 한옥의 전통양식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고, 남녀가 유별한 시대라 성당 가운데에는 남반과 여반을 구분하는 칸이 처진 것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 신자 800여명 성지순례
800여명의 순례자들은 예수의 삶을 형상화한 ‘십자가의 길’을 따라 나바위 성당 뒤쪽에 자리한 성모동산으로 모였다. 새벽부터의 고단함과 순례 길의 피곤함도 잊은 채 한 성인의 헌신과 삶의 흔적을 느끼며 의정부교구 주교좌 성당 배영민 주임신부(세례명 베드로)가 집전하는 미사가 시작됐다. 찬송과 기도, 감사와 감격 그리고 성찬의식의 모습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면 많은 것으로 열매 맺는다’는 성서의 진리를 확인시켜 주는 현장이었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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