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3’
북경기신문 창간11주년기념 ‘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재
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3’
중국인 냉화유가 자신의 가게에서 등짝에 칼이 꽂힌 채 발견된 것이다. 이웃집 아낙이 지나다 가게 문이 열려 있어 이를 수상히 여기고 들어가 본 결과 입으로는 피를 토한 채 쓰러진 그를 발견한 것이다. 지서에서 경찰관이 달려왔다. 누군가 그를 죽이고 금은붙이들을 몽땅 쓸어갔다는 것이 확인됐다. 아침 내내 시장 안이 시끌벅적했다.
그러는 사이 마실이 금붙이를 노리고 남자를 시켜 그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일기 시작했다. 필경 자신과 잔 남정네 중 누군가를 시켰을 것이며 그 자신은 망을 보았을 것이라는 말이 오후가 되자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갔다... 이날따라 마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호박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상품 이것저것을 만져보며 공연 때까지 시간을 때우던 이들 모녀가 오늘따라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차에 철거하는 사람들이 곧 온다는 말이 삽시간에 나돌았다. 철거인이 약속한 7월말이었다. ‘설마’ 하던 상인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물건들을 치우느냐 마느냐로 입씨름을 하는 사이 어디선가 애잔한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평소보다 약간 이른 오후 4시경이었고 늘 노래하던 장소가 아닌 광복동과 충무동을 잇는 시장 초입 사거리였다.
오늘 첫 곡은 <신고산타령>이었다. 한번 후렴을 길게 뽑아 올린 마실은 이날따라 피를 토하듯 목청을 길고 높이 올렸고 이어 최근 유행하는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주변이 숙연해졌고 그녀 주변으로 다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이 나쁜 년, 어디서 뻔뻔하게 노래를 해 샀고 지랄이여”하는 여자의 앙칼진 고함소리가 주변을 흔들었다. 그릇장수 마종태씨의 아내였다. 이번에는 그림장수 김희수씨의 아내가 그녀의 옷가지를 잡고 늘어졌다. 그녀의 남편 역시 마실과 동침한 것으로 소문이 나면서 부부싸움이 잦던 터였다. 그와 동시에 시장가게 여주인 여럿이 마실의 목과 옷고름을 낚아채면서 옷소매 한쪽이 죽 찢겨나갔고 이윽고 치마마저 벗겨져 내리는 찰나 어디선가 돌이 날아들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실은 바닥에 쓰러지고 그녀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낙네들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지 그런 그녀에게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쳤다. 동시에 비가 ‘와’하고 뿌리기 시작한다. 한편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10여명의 장정들이 시장 초입부터 난전가게들을 부시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들의 손에는 각목과 쇠뭉치들이 들려있었고 머리에는 ‘자유시장 건축반’이란 띠가 둘러 있었다. 이들은 대청동에서 부터 곧바로 도떼기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면서 사람들을 향해 무어라 고함을 쳤고 난전상들이 그들에 의해 일제히 떠밀리는 가운데 이런저런 물건들이 어지러히 흩어져나갔다.
그러는 사이 인근지서에서 들 것을 가져와 마실을 뉘였다. 이미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간신히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마실의 얼굴에도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들 것을 따라가는 호박의 얼굴에도 빗방울이 쏟아졌다. 저작거리는 이미 비와 철거인과 난전상들의 마찰로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호박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가 너무 늦게 왔구먼” 그를 돌아보던 호박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실이 아낙들에게 맞을 때도 꿈쩍도 않고 쳐다보기만 하던 아이였다. 오늘따라 호박은 자주색 저고리에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있었는데 비에 흠뻑 젖어 조그만 꽃송이가 겨우 가지에 매달려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런 소녀아이가 마실의 머리띠만은 놓지 않고 꼭 잡고 있었다.
순간 들 것에 실려 있던 마실의 팔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와 함께 얼굴의 미소도 사라졌다. 다시 한 번 천둥 번개가 쳤고 하늘은 먹장구름이 뒤덮은 가운데 쉴 사이 없이 비를 토해냈다. 비는 마치 마실이 부르던 노래처럼 도떼기시장과 깡통시장, 자유시장을 돌아 부산 앞바다를 건너 영도와 오륙도 그리고 부두 전체에 넘실거렸다.(다음호 계속)
글/ 방영훈(동두천영상단지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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