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4
북경기신문 창간11주년 기념 ‘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재
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4
(3)수국애상(水菊哀想)
창경원 연못을 끼고 앉은 돌담아래 수국이 피어 있었다. 꽃은 무리지어 피면서 흰색 파란색 그리고 어떤 것은 갓 자주 빛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연실이 수국들 사이에 앉아 꽃 내음새를 맡으려 했다. “애수가 깃들여 있어요. 이 꽃에는.....”
방 사장은 지난 밤 서울에 도착했다. 딱히 볼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 영철을 만나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무엇보다 연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감정이 앞서 무턱대고 기차를 탄 것이었다. 신 사장은 ‘영화 쪽 사람들과 새 영화에 대해 의논 할 일이 있다’며 방사장에게 머리도 식힐 겸 동행하자고 권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결혼식 때 저 꽃을 가슴에 안고 결혼서약을 한 다네요” “드레스를 입고 말이지. 그렇게 식을 올리고 싶은가?” 연실이 그를 바라보며 바시시 웃었다. 날은 맑았으나 비가 오려는지 공기 중 습기가 묻어났다. 그런데도 햇살은 간간히 구름을 뚫고 나와 두 사람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방사장은 모자를 벗어 땀을 훔쳤다. 연실이 양산을 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수국이 핀 담장을 돌았다. 매미소리가 쉴 새 없이 울었다.
“얘기 한 토막 들려줄까?” 덕팔에게서 들은 마실의 얘기가 생각났다. “곡마단의 한 소녀가 사랑에 빠졌어. 자네처럼 노래를 불렀는데 나이 열 셋부터 말이야” 곡마단은 전국을 다녔다. 소녀는 누가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창을 잘했고 노래라면 한번 들으면 음절까지 놓치지 않았다. 경기 양주목 장터에서 공연을 할 무렵이었다.
학생인 듯 한 청년 한 명이 구경을 왔다간 그 길로 그녀를 따라다녔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그녀의 나이 이제 열일곱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창가를 잘하는 반면 청년은 글을 깨우쳤다. 한자뿐 아니라 일본어 그리고 우리 방언까지 죄다 꿰고 있어 청년은 소녀에게 우리글을 가리켰지. 공연이 끝난 밤 두 사람은 어둠속에서 도 흙에 나뭇가지로 쓴 글을 읽었고 겨울바람이 매서웠음에도 그렇게 깔깔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청년이 사라졌다. 며칠을 기다렸으나 소용없었다. 소녀는 청년에게서 들은 바 있어 그의 집을 찾아 나섰다. 불국산 아래 임꺽정봉이 바라다 보이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노인이 말했다.
“끌려갔어, 징용말이야. 왜놈들한테....”
“어디루요?”
“하얼삔으로 간댔지 아마?”
하늘이 노래지는 듯 했다. 그와 보낸 마지막 밤, 청년은 소녀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댔다. 남자의 체취가 묻어나는 가운데 그의 가슴이 ‘쿵쾅쿵쾅’ 소리를 낸다. 그것은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가있든 내가 너를 찾아낼 거야” 영문 모를 얘기를 뱉어 내던 청년은 그렇게 어둠속에 사라져갔다. 마실은 풀어헤쳐졌던 자신의 저고리 앞섶을 여미었다. 속치마에서 뭔가 끈적이는 느낌을 받으며 숙소를 돌아온 마실은 이날부터 노래하기가 싫어졌다. 청년의 얼굴이 떠올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곡마단은 짐을 싸서 의정부역으로 나갔다. 곧 음력설인지라 큰 도시로 나가 공연을 할 참이었던 것이다. 일행들이 하행선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일본헌병들이 소녀들을 잔뜩 이끌고 와 상행선 플랫홈으로 가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일본경찰에게 ‘어디로들 가느냐’고 물었다.
“하얼빈까지다. 왜?” 소녀가 말했다. “아저씨, 저 이 열차 좀 태워주세요. 열차 삸이 없어요. 대신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마실의 아래 위를 훑어보던 그가 히죽이 웃으며 다짐하듯 물었다. “후회 안할거지?” “예”
영문도 모르는 채 열차에 올라타는 순간 기차가 역을 출발했다. 그때 창 너머 곡마단의 오빠인 덕팔이 그녀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며칠을 달렸는지 모른다. 그동안 다른 열차로 한번 갈아탔고 마지막 역에 닿았을 때는 날이 덥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군용트럭으로 옮겨졌다. 모두 20여명의 처녀들이 웅크리고 앉아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마실의 옆자리에는 그녀보다 한 살 많은 봉순이가 있었다. 말 수가 적은 그녀는 버스가 달리는 동안 속이 메스꺼운지 쉬임없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경기도 광주가 고향이라는 그녀는 이웃의 독립운동을 나간 정혼한 남자가 하얼빈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경성으로 왔다 이들 틈에 끼게 된 것이라는 사연이었다.
마침내 트럭이 멎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위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위안소였던 것이다. 사방이 밀림이며 늪이었다. 도망갈 곳도 도망을 칠 길도 없었다. 누군가 필리핀이란 나라가 가까이 있을 뿐 그곳으로 가려해도 몇 날을 밀림과 강을 건너야한다고 알려준다.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이 시작됐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끌려 온 여자들의 눈에서 살기가 돌았다. 그런 가운데 봉순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봉순의 임신을 눈치 챈 사병 하나가 총 개머리판으로 그녀의 머리를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봉순이 아랫배를 지키려고 체위를 거듭 바꾸면서 병사의 화를 돋우었다는 것이었다.
위안부들의 항의가 벌어졌다. 식음을 전폐하는 것은 물론 병사들의 어떤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먹이 날아오고 군화에 짓밟히면서도 여자들은 똘똘 뭉쳤다. 여자들 중에는 중국과 필리핀 그리고 태국등지에서 온 여자들도 있었는데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모두 단결해서 일본군들과 맞섰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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