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5’
북경기신문 창간11주년 기념 ‘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재’
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5’
그런 가운데 봉순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봉순의 임신을 눈치 챈 사병 하나가 총 개머리판으로 그녀의 머리를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봉순이 아랫배를 지키려고 체위를 거듭 바꾸면서 병사의 화를 돋우었다는 것이었다. 위안부들의 항의가 벌어졌다. 식음을 전폐하는 것은 물론 병사들의 어떤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먹이 날아오고 군화에 짓밟히면서도 여자들은 똘똘 뭉쳤다. 여자들 중에는 중국과 필리핀 그리고 태국등지에서 온 여자들도 있었는데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모두 단결해서 일본군들과 맞섰다.
그러다 중국인 여자 한 명이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개머리판으로 맞은 두 개골이 파열되면서 그 자리에 파리떼가 끓었다. 그녀를 묻는 날 마실은 자신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사모곡이었다. 조선인 여자들 모두가 후렴을 쳤고 눈물을 뿌리면서도 입술을 앙다물었다.
모진 것이 사람 목숨이라 했던가. 결국 일본군과 위안부들 사이 합의가 이루어졌다. 봉순이 출산 때까지 사병을 받지 않는 대신 마실이 아침에는 확성기를 통해 일본군가를 부르고 저녁 회식자리에서는 병사들을 위한 찬가를 부르기로 한 것이다. 막사 주변에는 늪과 물구덩이 많았다. 5월이 되자 주변 호수와 돌담 사이 이곳저곳에서 하얀 수국이 피기 시작했다. 수국은 6월부터는 파란색으로 7월 들자 연자주색으로 여자들의 피맺히는 한처럼 가슴에 옮겨붙었다.
그러는 사이 봉순이 몸을 풀었다. 딸이었다. 이름을 ‘호박’이라 지었다. 호박처럼 못생겼으니 남정네들이 가까이 오지 말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다시 해가 바뀌면서 부대 이동이 잦아졌다. 여기저기서 전투가 벌어졌고 미국병사들이 포로로 잡혀오는 일도 많아졌다. 전쟁이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위안소가 지어진 막사근처에 지네와 전갈, 그리고 뱀이 들끓었다. 사람들이 인근에 담배가루를 풀고 백반을 놓았으나 전갈만은 통하지 않았다. 전쟁 막바지인 듯 했다. 쉴 새 없이 이곳저곳으로 포탄이 날아들었고 그런 가운데도 5월이 되자 일대 호수와 돌 사이 다시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하얀 수국이 일제히 봉우리를 터뜨리는 날 아침 소동이 벌어졌다. 봉순이 전갈에 물린 것이다. 몸이 퉁퉁 부어 올랐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봉순은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마지막 숨을 고르면서 그녀는 마실의 손을 꽉 붙잡고 말한다.
“우리 애기, 제 아빠를 꼭 찾아줘” 수국이 무심하게 아침이슬에 젖어있는 언덕길을 따라 봉순을 묻었다. 그로부터 한달후 전쟁이 끝났다. 포로로 끌려가던 일본인 장교가 마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말했다. “우리 나라 사람, 조선사람한테 너무 심하게 했어 미안해”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자신과 첫날밤을 지낸 총각이 야속하기도 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다.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호박의 아버지도 찾아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마실은 자신과 이들 조선인 여자들에게 던져졌던 사실들을 누군가한테는 꼭 밝혀야 한다는 각오로 귀국선에 몸을 실었다. 그의 품에 호박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4)곡마단의 추억
연실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때 맑은 하늘에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낙비인가 봐요.” 두 사람은 근정전 아래로 비를 피했다. 수국이 오므러들었다 다시 잎을 벌이면서 빗방울이 매달리기 시작한다. “오후 약속이 있다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얘기 결말을 다 해주셔야 해요” 남자의 고향인 양주부터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죽었다면 유해라도 와야 할 터인데........”
매일 마을섶으로 나가 아들을 기다리는 그의 노모곁에서 한달을 지냈다. 그 사이 호박은 걷기 시작했고 다소 쌀쌀한 성격인 듯하나 재롱이 늘어갔다. 이번에는 봉순의 고향인 광주로 내려갔다. 봉순이 일러준 남자의 이름만으로 그의 집 대문을 넘자 마침 그곳서는 혼례가 한창이었다. 독립운동 떠났던 봉순의 남자가 돌아왔으나 그는 자신의 정혼녀가 돌연 사라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외아들이 살아돌아오자 한사코 다른 여자와 혼례를 서둘렀다는 이웃집 사람 얘기였다. 마실은 하늘이 깜깜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겪었던 일을 이들이 알면 뭐라고 할까. (다음호 계속)
|
|
[ Copyrights © 2010 북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