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7’
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7’
(지난 호 계속)그런데 어마, 멀리서 노래가락이 흘러나와쌌는디 딱 듣던 그 소리여, 소리가. 이 가슴이 그 자리서 방망이질을 치는디 아이고마 어쩔거나이. 내가 그 자리서 콱 죽는 것 같았다니께. 마실이 죽기 사흘 전이었다. 소문을 들은 덕팔이 만중을 앞장세워 시장으로 나갔다. 공터에 들러 마실의 육자배기를 듣는 순간, 그는 가슴이 탁 멈는 것 같았다.
곡마단에 있을 때처럼 머리에 오색실 채를 두르고 소리음이 달라질 때마다 가녀린 손을 세웠다가 쓸어내리는 모습까지 예전이나 똑 같았다. 그러나 얼굴에는 지엄함과 신비감이 더했고 그런 모습은 이미 소녀시절의 그녀가 아니었다. 마실의 얼굴에 서린 체념과 무심함이 이미 그녀를 다른 아낙으로 변하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석남이라는 사람, 워낙 똑똑하여 갖고, 일본사람들한테까지 인기가 있었는데 그만 ........오끼나와 전투 때 였어요. 많이들 죽었죠. 나는 이렇게 팔 하나 없애고 살아왔지만서두요.” 덕팔이 마실을 만나기 하루 전 그녀가 마침내 석남과 한 부대에 있었던 남자를 찾았다가 들은 얘기라는 것이었다.
그 날 밤 마실의 지난 얘기를 들으며 덕팔은 얼마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울분과 한탄과 왜놈들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얼마나 술을 들이켰는지 모른다. 그런 마실이 ‘이제 다 잊어 불고 나머지 세상 오순도순 웃으며 사세’라는 그의 말에 “오라버니, 며칠 후면 도떼기시장도 끝이야요. 징용갔다 난장치는 사람들 마지막 날은 내가 노래라도 불러야 마음이 편하겠네요. 전쟁터에서 죽은 그 사람을 위해서라두요”하며 그 날이 자신의 공연 마지막 날이었다는 것이었다. 공연을 나가는 날 아침, 마실이 덕팔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오라버니, 호박을 우리 친딸처럼 데리고 살거죠?“
이웃 중국인 냉화유를 살해한 사람은 그곳에서 난장을 치던 충청도 사람 두 명이었음이 밝혀졌다. 마실이 보수시장에서 냉화유와 술을 마실 때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도떼기시장 난전상이 헐린다는 소문을 듣고 냉화유의 금을 노린 끝에 냉 사장의 단골 순대국밥집에서 그를 따라가다 그가 자신의 가게문 열쇠를 따자마자 달려들어 등짝에 칼을 꽂은 것이었다.
시장을 돌며 마실이 남정네들과 몸을 섞는다는 소문을 낸 것도, 점집 노파에게 돈을 쥐어주며 난전상들에게 마실로 하여금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하도록 사주한 것도 그들임이 드러났다. 마실의 무덤은 영도 태종대 앞바다가 환히 내려 보이는 언덕위에 마련했다. 호박의 뜻에 따라 수국을 한 아름 무덤 주변에 심었고 독경을 하던 만중이 끝내 오열을 하며 나라 잃은 이 나라의 순박하고 어질디 어진 꽃 같은 소녀들이 다시는 군화에 짓밟히지 않도록 이곳에 절이 들어설 것이라 설파했다.
이날따라 햇살이 잔인할 만큼 눈부시게 빛났다. 바다는 파도조차 잠들은 듯 잠잠했고 여름 바람을 타고 배 한 척이 한가로이 떠있었다. “이제야 마음의 안식을 찾은 듯하네. 우리 모두가 말일세” 만중이 말하자 덕팔은 호박을 끌어안으며 “그녀가 나에게 딸을 주고 갔네 그려”하고는 하늘을 향해 웃음인지 눈물인지를 한바탕 쏟아냈다. 그 옆으로 수국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함초롬히 피어있었다.(끝)
*글/ 방영훈, 부산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24년 재직했다. 현재는 동두천영상단지 추진위원장과 본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부산상회(1-7회)는북경기신문(www.bkknews.kr)인터넷 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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