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훈 作 부산상회(釜山商會)8 ‘사이판’
북경기신문 창간11주년 기념 ‘방영훈 미공개 소설’ 연재
부산상회(釜山商會)8 ‘사이판’
부산 앞바다로 들어서자 두 사람은 갑판으로 나왔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아직 추위에 익지 않아서인지 목덜미가 시려왔다. 멀리 육지가 거무티티한 자태를 드러내는 가운데 왼쪽으로 오륙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2년만인가. 고향 땅 밟는 것이....” 구태봉이 염창섭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2년하고도 3개월일세. 우리가 징용끌려간 지가...” 창섭은 수염을 기른 채였다. 구렛나루며 턱수염이 자랄 만큼 자라 온 얼굴을 덮다시피 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구태봉은 제주도에서, 염창섭은 동래 기장에서 징발됐다.
각각 다른 배를 타고 일본항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일주일여간 제식훈련을 받는가 싶더니 짐짝처럼 다른 배에 옮겨졌다. 승선한 군함에는 두 사람 외에도 조선인 인 듯한 젊은이들이 여럿 보였다. 그들 모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지만 가슴에는 일제히 일장기를 달고 있었다. 어떤 이는 배멀미를 심하게 하느라 연신 끅끅대고 있었다.
그렇게 한 이틀쯤 지났을까. 갑자기 날이 바뀌었다. 더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집합명령이 떨어졌다. 구축함 후미 갑판위로 나서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작열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섬은 마치 지구상에서 낙오된 것처럼 바다 한가운데 꿈쩍도 않고 서있었다. 그러고 보니 섬의 너머 또 하나의 섬이 나타났다. 그뿐이었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서 마치 점처럼 떠있는 육지는 오직 그뿐이었다. 고독해보이면서도 신기루같아 보였다. “사이판(Saipan Island)이래” 구태봉이 염창섭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통성명을 나누었다. 나이는 태봉이 한 살 위였다.
밤이 되자 별이 하늘 가득 쏟아져 내린다. 모래는 여자 숨결처럼 따스하고 바다빛깔은 나뭇잎보다 더 연한 연두색이었다.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사람을 두려워않고 모여드는가 하면 숲에는 야자수열매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바닷게들이 가끔씩 길을 잃고 모래사장으로 기어올랐다. 이들 게는 코코넛 열매즙을 파먹느라 꾸역꾸역 몰려오는 것인데 타 지역 게에 비해 자그마하지만 정력에는 유별나다고 현지인들이 알려준다.
진지사이 굴을 뚫는 일이 시작됐다. 굴 파는 일에는 민간인들도 참여했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한국인들도 50여명이나 살고 있었고 마주 보이는 티니안 섬에도 비슷한 숫자의 한국인촌이 있다고 알려준다. 일본인 민간인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살고 있었다. 이미 1800년대 후반부터 무역항이 드나들기 시작하다 1905년 사탕수수를 경작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한국인에 비해 현지인들은 미개한 민족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거의 벌거벗다 시피한 채로 섬 안쪽 산기슭에 모여 사는 이들은 사탕수수밭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음식을 나눠받아 사는 것이 전부였다. 글도 없었고 집이래야 야자수 잎을 엮어 지붕을 만들고 대나무를 잘라 칸을 친 게 전부였는데 동양인이라고 하기에는 피부가 검고 한 결 같이 허리가 굵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부지런하고 셈이 빨랐으며 지혜로워 정착 촌을 만들어나갔다. 각종 야채를 경작하고 장을 담갔고 바느질이나 길쌈을 통해 옷가지를 스스로 만들어 입고 다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국인들 태반은 하와이를 거쳐 이곳에 정착했다고 알려준다. 그들을 만났을 때 가장 기쁜 일은 김치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콩을 재배,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가끔 비행대대가 지나가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때면 일제히 진지 속에 묻혀 대공 기관총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낮에는 자고 주로 밤에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먼동이 틀 무렵 해가 솟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바로 눈앞 수평선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일직선으로 솟구치면서 연신 제 몸에서 불기둥을 떨어뜨린다. 제주 고향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크고 우람하면서도 탐욕스러웠다. 솟구치는 중에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고 그야말로 그렇게 불끈 솟아오르면서 금새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여나갔다.
글/ 방영훈(동두천영상단지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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