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기자수첩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尙何言哉 尙何言哉(상하언재 상하언재)'
요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이 연일 화제다. 우리나라의 모든 영화 기록을 깨고 신기록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 수를 비롯해 모든 흥행기록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으며, 특히 경제단체의 많은 CEO들도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십을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이 지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위대한 성웅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도 무능한 군주 선조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세계 4대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한산도 해전을 잘 알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해전은 1592년부터 1598년에 걸쳐 일어난 임진왜란의 해전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중대한 전투였으며, 세계 4대 해전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 이순신 장군의 무공이야 헤아릴 수 없지만 한산대첩(閑山大捷)이야 말로 임진왜란 초기 수세에 몰렸던 전세를 단번에 뒤집어 버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후 ‘명량전투’를 통해 아쉽게도 그 빛을 잃어(?)버렸다.
아무튼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전투에서 그 유명한 학익진(鶴翼陣) 전법으로 왜선 59척을 침몰시키고 왜병 9000여 명을 전사시켰다. 일본의 잘 훈련된 군사를 이끈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한 후 중국까지 넘보았으나, 그 야망은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에 의해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이런 이순신 장군을 질투한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잡아드렸으며 그를 모진 고문으로 죽음의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 하지만 선조는 1597년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하고 목숨을 잃은 것은 고사하고, 조선 수군의 모든 배와 무기, 병력을 다 잃어버리자 선조는 그제야 이순신을 다시 찾게 되었다. 1597년 7월 23일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 이순신 장군은 모진 고문으로 몸도 불편했지만 모친상을 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기복수직교서(起復授職敎書)'를 내린다. 기복은 어버이 상중에 벼슬자리에 나아간다는 의미고, 수직은 통제사직을 준다는 뜻으로 즉 '기복수직교서'는 모친상을 당한 이순신에게 벼슬을 내린 교서를 말한다. '기복수직교서'에는 선조의 후회와 더불어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에 임명하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선조는 백성을 사랑하고 부하를 아꼈던 이순신의 나라사랑을 알았으며, 그래서 이순신은 흩어진 조선의 수군들을 모아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교서 말미에 써져 있는 이 말은 당시 선조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제 그대를 평복 입은 속에서 뛰어 올려 도로 옛날같이 전라좌수사 겸 충청전라경상 등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도임하는 날 먼저 부하들을 불러 어루만지고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찾아다가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만들고 나아가 요해지를 지켜줄지어다'
그리고 이 교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尙何言哉(상하언재 상하언재)'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모르긴 해도 이순신 장군은 분명 이 구절에 눈이 멈춰졌을 것이다. 불과 다섯 달 전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선조의 사과가 진심으로 담긴 말이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서는 선조의 진심어린 후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이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물론 선조는 백성을 위한 의서 ‘동의보감’ 편찬도, 가장 위대한 민생 개혁이라 일컫는 ‘대동법도 모두 선조가 그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선조가 못 느낀 진실은 정치란 오로지 백성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육군 폭력사건, 정치인 뇌물사건 등 너무 어지럽지만 누구 하나 ’내 탓이요’ 하는 지도자가 없다. 비록 무능한 선조였지만 그래도 그는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조금은 무능해도 진실한 지도자, 거짓말 안 하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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