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교수의 맛있는 사람의 멋있는 이야기(1)
이현숙 교수
이현숙 교수의 맛있는 사람의 멋있는 이야기 ‘이태리의 단상’(1)
이태리 유학의 길
1991년. 내 나이 31살에 이태리 유학길에 올랐다. 1981년 대학 졸업 후 바로 국립합창단에 입단. 합창단과 오페라단에서의 10년간 무대생활. 단역에서 주역까지 국립오페라단과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참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정다운 가곡, 장일남 선생님이 지휘하시던 KBS 교향악단 등 TV 출연. 그리고 홍연택 선생님이 지휘하시던 코리안 심포니와의 협연도 심심치 않게 했었다. 그래도 오페라의 나라에 가서 전통적인 것을 직접 배우고 느끼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 아니 항상 어떤 환경이고 주어지면 다 할 수 있다는 패기가 있었다.
결혼은 1982년. 중학교 때 양궁을 했었는데 그때 만난 나의 첫사랑이 지금의 남편이다. 참 조숙하게도 13세 중학교 1학년 때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했고, 가까이 있기만 해도 심장이 터질 듯 그리고 내 심장 소리를 다른 사람이 들을 것 같은 생각에 혼자 얼굴을 붉히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남편이 많이 좋다. 그때를 생각하면 더 애틋해지곤 한다. 말없이 혼자 짝사랑 했던 시간이 한3년 정도였던 것 같다.
남편은 나보고 돌 냄비라고 한다. 아마 사랑도 그렇게 하나보다. 천천히 데워지는데 일단 달구어지면 오랫동안 끓고 있는 그리나 쉽게 식지 않는 돌 냄비. 그런데 매사가 그렇다 이해하는데 오래 걸리고 그 대신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들어 간 것은 특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계속 꾸준히 같은 길을 간다. 나 자신은 느린 템포를 속안에 넣고 사는데 남들은 내가 빠르고 능력을 갖춘 걸로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완벽한 걸 보여 주고 싶어서 무지무지 준비하고 노력하는 형이다. 나 스스로는 내가 곰 같다. 느리고 고집스럽고 평화로운데 화나면 곰처럼 파워를 갖는...
이현숙 교수의 맛있는 사람의 멋있는 이야기(1)
유학을 떠난 1991년은 나의 기도 10년의 응답이었다. 10년 동안 정말 꾸준히 기도하며 준비했다. 어느 날인가 갈 수 있게 해주시겠지.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꼭 들어주시겠지, 그리고 묵묵히 노력했다. 환경적으로 보자면 아이가 둘. 시댁에 같이 살며 금전적으로도 그리 넉넉히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도 늘 소망을 버리지 않았고 항상 희망과 꿈이 있었다. 이태리어도 몇 년간 준비를 했다.
왜냐하면 학창시절 유학을 가고 싶으면 그 나라 말을 준비하고 있으면 그 나라를 꼭 갈 수 있게 된다는 교수님 말씀이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리어는 단수 복수 여성 남성 등 인칭변화에 따라 동사가 다 변한다 그러므로 영어와는 참 판이하게 다르다. 라틴계 언어는 그래서 익히기 복잡하고 힘들지만 한번 습득되면 스페인어와 불란서 언어를 이미 반쯤 알고 있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불어를 2년 정도. 그리고 대학에서 다시 1년은 불어, 1년은 이태리어를 공부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소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태리어를 다시 시작하자니 쉽지 않았고 동사변화를 온 집안에 다 붙여 놓고 외웠다. 노래도 열심히 연습하고 특히 복근운동과 체력 단련에 아주 많은 노력을 했다. 그걸 옆에서 보는 남편이 꼭 공부를 더 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루는 전철 계단을 내려오며 동사변화를 외우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게 되었고 정말 발이 퉁퉁 부었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을 해도 유학길을 열어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집에 돌아와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하나님 저 10년 노력하면서 기도 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보시기에 저는 지구라는 공, 위에 앉아있는 작은 벌레에 불과한데 당신이 공, 위의 벌레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시는 건 아주 쉬운 일인데… 이제 그 기도도 그만하고 저는 유학을 포기하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다 내려놓을 때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같다. 그리고 때가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닫게 되었다.
안수 집사님이 치유의 은사가 있어 꼭 기도 받아 보라는 송정자 권사님의 권유가 있었다. 발목이 많이 아파 영락교회에 가서 기도 받고 있는 동안, 남편은 이태리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 김형기 집사님을 교회 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결국 이태리에 가게 되었다. 그 집사님과 얘기를 나누더니 집에 돌아와 자기는 이제 서울시청팀 양궁코치를 그만 두고 나의 성악공부를 위해 그리고 자신은 사업을 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몇 해 전에 시댁에서 분가를 하여 자그마한 집도 마련을 했고, 모든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갑작스런 남편의 결정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유학을 포기한 그 순간에 묘하게도 모든 일이 남편의 결정으로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다. 참 인생은 이렇게 한 순간의 결정이 모든 걸 뒤바뀌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바라던 기도 응답인데 막상 좋은 직장의 사표를 즉시 내고 움직이는 남편에게 오히려 브레이크를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 인간은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렇게 기도하고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다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까 이런 저런 걱정에 가기 싫어지는 마음. 이걸 누가 이해할까? 비둘기도 먹이시고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겠지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고 한 분만 의지하자 남편을 움직이게 해주었으니! 이렇게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해에 7살, 4살의 아이를 데리고 유학 길. 그러나 남편에게는 이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다음호 계속)
필자인 이현숙교수는 이화여대, 이태리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 베르첼리 비오티 아카데미아를 졸업하고, 국립합창단 단원, 국립오페라단, 김자경 오페라단 등에서 다수 오페라 주역을 맡았고, 현재는 의정부 예술의 전당 이사, 신흥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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