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 활동가 최준수 목사 소천
"평화와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 어김없이 그의 삶을 통해 위로 받고, 용기를 얻을 것”
북경기지역사회에서 평화운동의 씨앗을 뿌린 최준수 평화누리 상임대표가 지난 6일 아침,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떠나셨습니다(향년 75세).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시민운동의 현장을 지켰던 고인은 한 달 전,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도 고양의 시민사회가 연대하고 협업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가 2011년 출범시킨 지역사회 공론장 ‘고양포럼’은 12년째 줄기차게 이어져 지난 9월 25일 100회를 맞았습니다. 고양지역 시민사회의 역사적 순간이었던 100번째 포럼을 누구보다 기쁘고 뿌듯하게 기다린 고인은 병상에서 100번의 포럼을 매듭짓고, 현생의 삶을 온전히 마무리했습니다.
1948년에 태어난 고인은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빈들교회’를 세웠고, 이후 미국 드류대학에서 신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공부를 병행하며, 뉴욕한인교회에서 이민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다문화사역사로 일하다가 귀국한 고인은 청·장년 시절 내내 YMCA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고 서광선 박사와 함께 한국 YMCA 평화·통일운동의 대표적인 활동가였던 고인은 예순을 훌쩍 넘겼을 때 고양으로 들어와 지역 시민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남북 접경지역의 고양을 평화 통일운동의 거점으로 만들자는 화두였습니다. 먼저 고양에 자리 잡고 있던 고 서광선 박사, 고 유재덕 목사, 강경민 목사, 정성진 목사 등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의기투합한 고인은 평화운동을 이끌 주체로 ㈔평화누리를 만들었습니다. 평화누리를 통해 북한에 사과나무 심기, 밀가루 보내기, 털목도리 보내기 등 남북한민간교류의 물꼬를 텄고, 고양시 차원의 남북 상생기금을 조성하는데도 기여했습니다. 또 평화누리가 주체가 되어 매월 셋째 월요일 고양포럼을 열었고, 100회의 포럼을 이끌었습니다.
최준수 상임대표와 같은 시대에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에 열중했던 많은 활동가들은 정치권으로 진입하거나 일과 가정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예순이 넘어 고양에 평화운동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시민운동 현장활동가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를 ‘영원한 청년 활동가 최준수’로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집중했던 초월의 가치, 평화와 민주주의를 고민할 때 우리는 어김없이 그의 삶을 호출할 겁니다. 그 삶을 통해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정리/ 현성주
*본고는 본지 편집위원 최준수 목사의 부고를 발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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