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의정부 중, 공고 숨은 설립자 ‘송은 이병직’
선생의 큰 뜻에 옷깃을 여미며 늦었지만 마음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전한다.
아름답고 따뜻한 소식을 접했다. 지난 80년 동안 북경기 지역사회의 인재 요람으로 자리매김한 의정부 중, 공업고등학교가 개교 80년을 맞이하여 개교 비화가 밝혀져 동문 뿐아니라 시민사회에 화제가 되고 있다.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0권’에 의하면 화가 송은 이병직 선생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소장 미술품을 1937년과 1941년 두 차례에 걸쳐 팔아 모은 재산 40만원(쌀값으로 환산하면 현재 40억원 상당)을 고향인 양주(당시 양주군 의정부읍)에 의정부갑종농업학교(현 의정부 중, 공업고등학교) 설립에 기부했다.
이에 동아일보는 1939년 9월 9일자 신문에서 ‘40만원 혜척(惠擲) 이병직’이라는 제목으로 미담 기사를 자세히 다뤘 장안에 화제가 되었고, 이병직 선생의 기부에 힘입어 2년 후인 1943년 5월 10일 현 위치에 개교하게 되었다.
이병직 선생이 기부한 40만원의 크기는 당시 대중지인 ‘삼천리’(1940년 9월호)에 발표된 개인소득 금액을 보면 가름할 수 있다. 1위는 광산왕 최창학 24만원, 2위 화신백화점 박흥식 20만원, 간송 전형필 10만원, 인촌 김성수는 4만 8천원, 송은 이병직은 3만원 이었다.
숨은 설립자 송은 이병직 선생은 1896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7세 때 사고로 사내를 잃은 후 궁내부 내시가 되어 내시의 적통을 이었다. 그러나 13세 때(1908년) 내시제도가 폐지되면서 궁에서 나와 학문에 열중했고, 20세 때인 1915년 해강 김규진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을 배워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에 8차례 입선했고, 해방 후에는 국전 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주로 난초, 매화를 즐겨 그렸다.
특히 그림 보는 안목이 뛰어난 이병직 선생은 고서화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재 도록인 ‘조선고적도보’에 이병직 선생의 소장 작품이 조선시대 화화편 9점, 조선도자기 6점이 소개되었을 정도다. 그가 소장했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변상벽의 ‘닭’(간송미술관 소장) 김두랑의 ‘낮잠’(평양조선미술박물관 소장)김홍도 ‘자화상’ 등이 있다.
선생은 1973년 7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양주시 광적면 효천리에 안장됐다. 어려운 시기에 선생의 큰 뜻이 있었기에 의정부 중학교 29,776명, 의정부공업고등학교 31,496명이 동문수학할 수 있었고, 건강한 시민사회 일원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선생의 큰 뜻에 옷깃을 여미며 늦었지만 마음으로부터 감사인사를 전한다. 현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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